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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지금 ‘두 남자의 대리전’ [경향신문]

by 뉴질랜드고구마 2009. 4. 14.

태국은 지금 ‘두 남자의 대리전’ 

김민아기자 makim@kyunghyang.com

 

 

탁신 친나왓과 아피싯 웨차치와. 태국 정국의 핵인 두 사람이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벌이고 있다. 탁신 전 총리(60)가 반정부 시위를 사실상 ‘원격 조종’하고 나서자, 아피싯 현 총리(45)는 비상사태 선포와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맞섰다. 양쪽 모두 정치적 명운을 건 형국이다.
 

 

탁신 전총리(왼쪽)와 아피싯 현총리

 

태국 언론들에 따르면 탁신은 비상사태가 선포된 12일 “저들(정부)이 탱크를 거리에 진주시킨 지금이 시민혁명을 위해 국민들이 나설 때”라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귀국하겠다”고 밝혔다. 친 탁신 세력인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 농성장과의 화상통화에서다. 그는 홍콩과 캄보디아, 남미 등 해외를 떠돌면서도 거의 매일 UDD 집회 현장에 전화를 걸어 시위를 독려하고 있다.


탁신은 ‘성공한 최고경영자(CEO) 대통령’에서 ‘부패 지도자’로 몰락한 영욕의 정치인이다. 그는 1980년대 통신기업 ‘친’ 그룹을 세우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동통신 독점사업권을 따낸 데 이어 컴퓨터·케이블TV 시장까지 차지하며 억만장자가 됐다. 98년 타이락타이(TRT)당을 창당하고 2001년 총선에서 승리, 총리직에 올랐다. 탁신은 저소득층 부채를 탕감하고 의료보험을 거의 무상 제공하는 등의 복지정책으로 농민과 도시 빈민층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왕실과 군부, 관료 등 기득권층은 ‘포퓰리스트’라며 탐탁지 않아했다. 2006년 부패 의혹에 휩싸인 그는 군부 쿠데타로 축출돼 망명 생활에 들어갔다. 지난해 2월 귀국했지만 8월 다시 도피길에 올랐다. 10월에는 궐석재판으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됐다.

아피싯은 이번 반정부 시위 사태 초기에는 유화적 입장을 보이다 아세안+3 정상회의 등이 무산되자 강경책으로 돌아섰다. UDD 지도자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비상사태 선포와 시위대 강제진압 쪽을 택했다.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할 경우 정권의 존립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국제회의가 무산되는 초유의 사태로 훼손당한 리더십을 회복하겠다는 계산도 작용한 듯하다.

아피싯은 태국의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엘리트 정치인이다. 영국 뉴캐슬에서 태어나 명문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를 나왔다. 부모는 모두 의대 교수다. 27세 때 최연소로 의회에 입성한 뒤 청렴한 이미지를 앞세워 정치적 성장을 거듭했다. 2005년 민주당 당수가 된 그는 지난해 12월 역대 최연소 총리의 영광을 안았다. 약점은 서민과 동떨어진 이미지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해 12월 총리 취임 당시 “아피싯은 젊고 포토제닉하지만 다이내믹하지는 않다”고 평한 바 있다.

<김민아기자 ma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