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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의 '유저 이노베이션'‥잘 팔릴 제품은 고객이 가장 잘 안다

by 뉴질랜드고구마 2010. 6. 4.

[BIZ Trend] Best Practice

‥레고의 '유저 이노베이션'‥잘 팔릴 제품은 고객이 가장 잘 안다

한국경제 | 입력 2010.06.03 18:30

 
일본 요코하마시에 사는 나가바시 쇼우 씨(43).프리랜서 디자이너인 그는 요즘 자신의 '레고(LEGO) 제품'이 나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인터넷에 올린 제품 아이디어가 채택돼 레고의 덴마크 본사에서 신상품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그가 낸 아이디어는 일본의 잠수조사선인 '신카이6500'을 조립 레고로 만드는 것.조만간 레고 신제품 '신카이6500'은 전 세계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세계적 조립 완구업체인 레고는 2008년 말 일본에서 '레고공상(www.cuusoo.com/LEGO/)'이란 인터넷 사이트를 열어 신상품 아이디어를 모집하고 있다. 누구든지 '이런 레고 제품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올리면 회원들이 인기 투표를 한다. 여기서 1000표 이상을 얻으면 레고 본사는 상품화에 들어간다.

고객들의 니즈(needs)와 아이디어를 상품 개발에 적극 반영하는 '고객에게 배우는 경영'이다. 인구 550만여명의 소국 덴마크에서 1932년 탄생한 레고가 전 세계 130여개국 4억여명의 고정 고객을 확보한 데는 '고객의 지혜를 빌리는 지혜'가 있었다.

◆계기는 엉뚱한 사건에서

레고가 고객들로부터 신상품 아이디어를 구하기 시작한 건 작은 '사건'이 계기가 됐다. 1998년 시판한 조립 로봇인 '마인드스톰'의 소프트웨어 변형 사건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공동 개발한 이 제품엔 로봇을 제어하는 15개 종류의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었다.

시판 당시 일주일도 안돼 한 학생이 소프트웨어를 해체, 프로그램 코드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러자 레고 마니아들이 맘대로 프로그램을 변형,자기만의 마인드스톰을 만들기 시작했다. 레고 경영진은 격분했다. 소프트웨어를 크게 바꿔 인터넷에 돌린 사용자에게 항의문을 보내고 법적 소송도 검토했다.

그러나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변형에 흥미를 느낀 고객들이 잇따라 '자신만의 마인드스톰'을 만들어 댔다. 그게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고객도 크게 늘어났다. 레고 경영진은 어느 날 무릎을 쳤다. '이것이야말로 레고 고객을 늘릴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이 아닌가. '레고는 전략을 180도 바꿔 고객들의 소프트웨어 변형을 적극 장려했다. 또 마인드스톰 개량 모델 개발에 열성팬 4명을 직접 참여시키기도 했다. 이들은 미국 등지에서 덴마크까지 날아와 1년간 레고 직원처럼 개발에 참여했다.

◆'리더 유저'를 활용하라

레고는 '마인드스톰'의 경험을 토대로 2005년부터 인터넷을 통해 고객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디자인 바이 미(design by me)' 서비스다. 고객들이 인터넷에서 전용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아 자유자재로 블록을 조립해 본 뒤 맘에 드는 모델을 주문하면 실제 레고 제품이 집으로 배달되는 것이다.

레고는 이를 발전시킨 비즈니스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고객이 컴퓨터로 자신의 레고 작품을 조립해 인터넷에 공개하도록 한 뒤,온라인에서 그것을 사고 싶다는 고객이 일정 수를 넘으면 상품화하는 것이다. 이런 구상 중 하나가 일본의 '레고 공상'이다. 고객이 스스로 인기 제품을 개발하면 레고는 그에 맞는 블록만 만들어 배달해 주는 것이다.

물론 고객으로부터 좋은 히트상품 아이디어를 구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때문에 레고는 전 세계 성인 고객을 3개 계층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최하위는 일반 레고 커뮤니티 회원들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중간 계층은 특별히 열성적인 팬들로 '레고 엠배서더(대사)'라고 부른다. 최상위 계층은 레고를 활용해 비즈니스까지 하는 마니아 수준의 '레고 인정 프로'다. 이들은 현재 전 세계에 11명밖에 없다. 레고의 신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사람은 이들이다. 에릭 호니펠 MIT 교수는 "레고 인정 프로와 같은 리더 유저(leader user)가 기업의 이노베이션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CEO부터 고객과 소통해야

레고의 마인드스톰 개발 담당자였던 소렌 룬도씨는 닛케이 비즈니스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기업 마케팅을 고객과의 관계 정도에 따라 3단계로 분류해 설명했다. "가장 초보적인 게 매스(mass) 마케팅이다.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해 상품을 개발하는 단계다. 다음 단계는 고객과 좀더 거리를 좁힌 커뮤니티 마케팅이다. 고정 팬들로부터 의견을 들어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유저 이노베이션'으로 기업과 고객이 일체가 돼 다양한 상품 개발이 가능한 수준이다. "

그는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기업이 많지만 대부분 커뮤니티 마케팅 단계"라며 "유저 이노베이션으로까지 발전하려면 기업이 고객과 원활하게 소통해 거리를 더욱 좁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리더 유저를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다. 물론 리더 유저를 확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레고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다. 경영자의 자세다. 고객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선 경영자가 직접 고객과 접촉해야 한다. 레고의 경우 조르겐 빅 크누드스톱 사장 은 기업이 고객과 대화할 때 명심해야 할 5가지 포인트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①고객과의 대화 중요성을 CEO가 인식하고,깊이 관여하라.②즉각 반응하라.고객은 정확한 답변이 아니라 반응을 기대한다. ③거짓말 하지 말고,성실히 응대하라.④고객의 말을 잘 듣고,회사의 생각도 주장하라.⑤리스크는 있다. 그러나 리턴(수익)도 크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