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 별 - 황석영 소설
다민이 소프트볼 연습하는 날이다. 4시 30분부터 6시까지. 나는 낮잠을 넉넉하게 자고 나왔고 다민이는 방학을 충분히 즐기다가 나왔다. 목요일마다 운동장에 나올 때 책을 가지고 나와서 읽고 있다. 지난주에는 박완서 소설 그 산이 거기 있었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여기서 넘겼는데 오늘은 황석영 소설 한 권을 마무리했다. 넓은 운동장 밴치가 집에서 책 읽는 것보다는 집중이 잘돼서 좋다.
작년에는 1년 내내 공들여서 읽은 책이 토지였다. 스물네 권짜리 대작이었으니 십여 년 만에 읽기를 다시 시작한 내게 동기부여 하기에는 충분했다. 천천히 시간을 따라 이어지는 소설을 읽으며 잃어버린 것 책 읽기 근육을 복원하는 시간이었다.
교민 커뮤니티 사고팔고 페이지에 한국 책 열댓 권을 단돈 $1에 판다는 광고가 올라왔다. 벌써 하루 전에 올라온 광고글이라서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 이미 다른 사람이 가져갔으리라. 책을 사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다행히 아직 있다고 한다.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곳이라 일정이 맞지 않아 5일 뒤에 토요일 아침에 픽업 가기로 했다.
$1에 그 많은 책을 가져오기 미안해서 아침 일찍 장을 보며 블루베리 두팩을 더 샀다. 책을 내주기 위해 게라지 문을 이 열렸는데 게라지 한쪽 면이 모두 책장이고.. 책들이 보기 좋게 가득 꼽혀있다. 멀리서 봐도 태백산맥이며 토지 같은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블루베리 두팩을 내밀고 책을 챙기는데, 나보다 연배가 있어 보이는 주인장이 말씀하신다. 여기 옆에 있는 책들도 팔려고 올려놨는데 필요하시면 모두 가져가도 된다고. 묶음들 위에는 $20, $25, $30 가격표 스티커가 놓여있다. 팔려고 했는데 그냥 드릴 테니 모두 가져가시란다.
책 상자들을 차에 싣고 집으로 오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저 책들은 누가 읽었을까? 어쩌면 저렇게 나와 취향이 비슷했을까? 처음 책 묶음들을 봤을 때 예전 내 책장 책들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줄로 착각할 정도였으니..
젊은 시절 누구보다도 책 일기를 좋아했고 많은 책들을 모았었다. 어찌어찌 이민을 오게 되면서 하다못해 대학시절 교지까지 모두 이민 박스에 담아 뉴질랜드로 가지고 왔다. 그러나 몇 번에 걸친 이사를 통해서 책만큼 짐이 되는 것은 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 어머니댁 작은방에 모두 쌓아놓고 올걸... 다섯 번째 이삿짐을 챙기면서 밖에 나와있던 책들과 게라지 상자에 담겨 있던 책들을 모두 분류했다. 나중에라도 꼭 다시 보고 싶은 책만 남기고 기증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누니 대략 다섯 박스 남고 열댓 박스 정도 차에 실렸다.
오클랜드 북쪽 North Shore에는 교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리고 교민을 상대로 하는 상가들이 있고 거기서 한약방을 하시는 분이 한국 책을 모아놓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거기에 책을 모두 가져다 놓았다. 책 박스를 옮기며 들여다보니 작은 학교 도서관 정도의 책이 비치되어 있다. 나처럼 책을 가져다 놓는 사람이 많은지 한쪽에는 박스채 쌓여있는 책들도 많고.
버려서 쓰레기가 되는 것보다는 거기 도서관에 책이 보관되어 있으니 언제든 보고 싶을 때 가보자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도 3년 동안 한 번도 가볼 일이 없었다. 물론 집에 있는 책들도 열어볼 엄두가 안 났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영업 어려웠던지 한약방은 어느 날 문을 닫았고 한국도서관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책들도 함께...
올해엔 저 책들을 잘근잘근 깨물어 먹어보고 싶다. 특별한 간식이 없던 어린 시절 겨울날 잔설이 쌓인 언 땅을 파헤치며 캐낸 칡뿌리를 씹어 먹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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