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한번 잡아봐라.
아이들이 가끔 보는 유튜브채널 중에 서바이벌 프로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동남아 어디 사람이 땅을 파서 집도 만들고 수영장이나 여러 가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호주에서 촬영되는 어떤 남자가 약간 극한 환경에서 혼자 하루나 이틀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 남자는 최소한의 개인도구인 카메라와 칼 한 자루 타프 한 장 정도를 가지고 야생에 갑니다. 거기서 이전 사람들이 버리고 간 빈병 이나 바닷가에 떠내려온 끊어진 밧줄 같은 걸 이용해 하룻밤 머물 집을 만들고 물고기나 열매를 채취해 배고픔을 달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마치 레슬링 경기를 보듯이 많은 부분 연출이고 뻔해 보이는 스토리이지만 아이들 눈에는 아슬아슬하고 스릴 넘치는 볼거리가 되 눈여겨 봤나 봅니다.
특히 다민이는 관심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쓰러진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오더니 낚싯대를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엄마 바느질 박스에서 실타래를 꺼내고 클립을 하나 가져다가 만든 낚시 도구 세트를 보여줍니다. 이제 준비 다 되었다며 언제 낚시 갈 거냐고 데크 한쪽에 세워놓은 막대기를 볼 때마다 물어봅니다. 방학하면 파키리에 낚시 가자고 몇 번이나 약속.
저녁밥 먹고 동내 한바퀴 돌러 가려다가 아직 햇살이 따가워 바닷가에 나가기로 합니다. 머라이어스베이. 여기는 이민 초기에 아빠가 낚시하러 가끔 왔던 곳입니다. 일단 집에서 가깝고 동네사람들 낚시하라고 바다 쪽으로 쭉 뻗은 와프를 만들어 놔서 초보자가 낚시하기 편한 곳입니다. 바람 쐬며 시간 보내라고 만든 곳이라 대물이 나오거나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건 아닙니다.
아빠 미끼도 가지고 가야지... 차에 타며 이것저것 챙기는 다민이. 아니야 미끼는 바닷가 와프에 가서 해결할 수 있어.. 니꺼 장비나 잘 챙겨. 간단히 다녀오려고 다래 낚싯대는 아예 두고 갑니다. 두 아이가 큰 물고기 걸리면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나 대책을 논하는 동안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
7시. 아직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려면 두어 시간 남은 듯 햇살을 날리고 있고 비치에는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언덕에는 바람 쐬는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다행히 완전 로우타이드라서 와프에서 다이빙하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습니다. 만약 하이타이드였으면 다이빙하러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로 시장통처럼 붐볐을 것입니다.
채비를 푸는 동안 와프 계단을 내려가 벽에 붙은 굴을 깨서 알맹이를 두 개 가져와 클립에 걸어 줍니다. 갯바위 바닷가였으면 어떻게 굴껍데기를 깨트려 알을 꺼내는지 보여주고 한번 해보라고 했을 텐데 계단이 위험해서 생략. 옆에서 낚시하고 있던 중국인이 신기한 듯 쳐다봅니다. 그걸로 낚이겠어? 하는 표정. 이게 되겠냐? 그냥 해보는 거지... (내 마음속 대답입니다.)
조심조심 와프 아래로 바늘과 추라고 묶어놓은 돌멩이를 내립니다. 다 내려가고 다민이가 물어봅니다. 아빠 언제 물어? 기다려봐... 1분도 안지나 보조로 열심인 다래가 물어봅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돼? ㅡㅡ 낚시는 기다리는 거야라고 하니 '페이션트라고요?'
옆에 아저씨 봐봐. 바다만 쳐다보고 있잖아.. 사비끼 채비에 새끼손톱만큼씩 닭고기를 잘라 끼워 넣으면 뭐가 잡히려나? 바늘을 약간 가릴 듯 작게 미끼를 끼우면 아지 같은 작은 거 잡아보는 맛이라도 있을 텐데... 예전 나처럼 초보인 듯하다.
이민 후 바다낚시 처음 나설 때... 어찌어찌 동내 낚시점에서 낚싯대 세트를 사고 미끼는 뭘 쓰는지 몰라 한국에서 해본 기억을 살려 정원 후미진 곳 땅을 파 우유통 한가득 지렁이를 잡아 이 와프에 왔습니다. 바늘에 지렁이를 끼워 던지려는데 미리 와서 낚시하고 있던 한국 조사님께서 넌지시 한마디 합니다. '뉴질랜드 물고기가 지렁이를 알랑가?' ㅡㅡ
아빠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 10분쯤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자 다래가 여러번 물어봅니다. 그래 많이 기다렸다. 한번 올려보자. 텅비어 올라온 채비를 보며 다민이가 컴플레인합니다. 우리도 저 옆에 아저씨처럼 멀리 던져야 한다고.. 다시 굴미끼 따러 내려가기도 귀찮은데 아직 만족을 못했는지 꼭 한 마리 걸어갈 작정입니다. 하아...
야 나 미끼 좀 쓸게.. 옆에 중국사람 미끼판에 잘라놓은 닭고기 한점 얻어다가 다민이 클립 바늘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멀리 던지기 위해 와프 벤치에 올라서서 힘껏 바다를 향해 돌추를 던지라고 합니다. 줄통을 잡은 다래도 긴장하고 지켜봅니다. 하나 둘 셋... 그래 돌추가 제법 멀리 날아갑니다. 휘릭 ~~ 끝. 돌추가 너무 힘차게 날아간 나머지 실과 실을 연결했던 매듭이 풀려서 그대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ㅜㅜ
아빠 어디 갔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다래가 눈이 동그래져 물어봅니다. 흐미 이제 집에 가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해가 지려고 해서 철수 하려 했는데... 다민아 다음번에 채비 더 확실하게 만들어서 도전해 보자라고 했더니 포기하지 않고 와프를 왔다 갔다 하기 시작합니다. 뭐 하냐고 물어보니 혹시 다른 낚시꾼이 버리고 간 낚싯바늘 있나 찾아보는 중이랍니다. 오늘 꼭 뭔가 잡고야 말겠다는 생각. 결국 낚싯바늘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내가 다민이 만한 나이였을 때입니다. 외할머니집에 심부름 갔다가 마루에 누워 천장을 보니 천정과 지붕 사이 기둥에 기다란 대나무가 끼워져 있습니다. 꺼내보니 몇 해 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사용하시던 낚싯대였습니다.
깡촌에 살았던 외할아버지는 농사일은 전혀 손대지 않고 선대에서 물려준 재산을 노름으로 탕진하시고 낚시나 즐기시던 한량이셨답니다. 그 할아버지가 쓰시던 낚싯대 인지라 고급집니다. 길고 가는 대나무를 다듬고 중간중간 낚시줄로 매듭을 지어놓은 진짜 좋은 낚시대였습니다. 외할머니께서 흔쾌히 가지고 가라 허락하셔서 집으로 가지고 왔고 어쩌다 한번씩 동내 냇가에 나가 그 낚싯대로 고기를 잡곤 했습니다. 그냥 대충 길쭉한 대나무 낚싯대 쓰던 시절 호사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 낚싯대로 낚시를 하고 해 질 녘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마당에서 일을 하고 계시던 어머니는 골목까지 마중(?)을 나와 낚싯대를 반으로 탁 꺾어서 사정없이 매질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한대만 맞고 멀찌감치 도망 나왔으나 미쳐 화가 안 풀리셨는지 집으로 들어오기만 해 봐라 다리몽둥이를 뿌지러 놓겠다며 소리소리... 그 낚싯대는 몇번 더 꺽여서 바로 아궁이로 직행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외할아버지가 저 낚싯대 가지고 한량노릇 했는데 장녀인 어머니는 외할아버지 대신 집안일 해야 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으며 그놈의 낚싯대가 얼마나 보기 싫었겠습니까? 그걸 가지고 막둥이가 낚시다니며 시간 보냈으니 화가 나실만도 했지요.
그 후로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 다녀오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낚시는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뉴질랜드 와서 다시 시작한 낚시예요. ^^* 이번에는 다민이가 채비를 제대로 만들 수 있도록 좀 도와줘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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