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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생활/Diary of Jung

욕쟁이 아크니스 정년 퇴직

by 뉴질랜드고구마 2023. 9. 15.

욕쟁이 Acquisi 아크니스 정년퇴직
65살이 되면 퇴직과 함께 연금을 받는다

욕쟁이 아크니스가 오늘(금요일) 1시에 환송 파티를 마지막으로 36년 일했던 Countdown을 떠난다고 한다. 한 달 전쯤 이 소식을 듣기는 했는데 벌써 오늘이 되었다.

내가 일하러 가는 오래되고 작은 카운트다운에서 고기파트를 담당하는 직원이 아크니스다. 새벽 4시에 다른 여직원 2명과 함께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는데 내가 가서 뒷문 벨을 누르면 조용히 철문을 열어준다.

조용히는 아니다. 3년 전인가 처음에는 뒷문 벨을 눌러도 3분, 5분 아무 반응이 없다가 철커덕 중간문을 열고 뒷마당으로 나오며 '씻-!!' 하며 '아이고 18 또 너냐'하는 뉘앙스의 욕을 싸지르고 눈알을 불알이며 문을 열어 주곤 했다. 멱살 잡고 싸울 뻔했지...

그러나 갈 때마다 반복되는 그녀의 똑같은 반응을 보며 나는 내 방식대로 대응했다. 그 망구 욕소리보다 더 큰소리로 '굿모닝 씨스터-!! 하와유-!!' 하면서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면 뭐라 뭐라 구시렁거리며 내 눈을 피한다. ^^;;

어느 날 아침에는 일찍부터 카페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길래 어디 아프냐고 물어봤더니 머리도 아프고 배도 아프다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체한 듯 보여서 한국식으로 처치를 잠깐 해줬다. 등을 곱게 펴게 하고 한참을 쓸어주고 두드려줬다. 그리고 손바닥 엄지 손가락 사이 지압도 해줬고, 카페에 있던 꿀을 잔뜩 풀어서 한잔 마시게도 했다. 운이 좋았던지 곧 컨디션이 회복되었네?!! 그 후로는 가끔 보면 자기 등 좀 두드려 달라고 함.. ㅜㅜ

지난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3개월짜리 임시 매니저가 일하면서 매장 직원이나 우리 클리너를 완전 들들 볶던 때였다. 어느 날 아침에는 새벽부터 열일하고 있는 망구를 스토어 매니저가 사무실로 부르더니 하던 일에 대해 꼬치꼬치 따지며 무슨 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일을 느릿느릿하고 처리가 느리니 불만이었던 듯... 망구는 끝까지 사인 안 하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식으로 버티다가 나오더라.. ^^;;;

그 며칠 후 토요일, 매장 밖 주차장에서 토요장터가 열린다. 아침 7시 무렵.. 망구가 일하다가 장터에 나가 샌드위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들고 자기가 일하는 창고로 들어가길래 '모처럼 여유 부리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일 끝내고 집에 가려는데 뒷문으로 문제의 스토어매니저가 들어온다. 토요일에는 보통 매니저가 출근을 안 하는데 일이 많았는지 매장에 나온 것이었다. 다행히 망구 창고 반대쪽으로 들어간다. 나도 다시 얼른 안으로 가 망구 창고에 가보니, 우리 망구 커피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네... '야 매니저 출근했다'라고 하니 부리나케 정리하고 일하러 뛰어 나간다. ^^;;;
그다음 날 만나니 내 어깨를 다독이며 고마웠다고 몇 번을 말하더라. (사는 게 누구나 힘들어...)

나는 망구가 문 열어 줄 때마다 내뱉은 욕은 나한테 한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내가 벨을 누를 때 매장 안에는 자기를 포함해서 3명이 있는데 게으르고 욕심쟁이 인디언 아줌마는 벨 소리를 절대 못 들은 척하고, 다른 사모안 아줌마는 뒷문 반대쪽 창고에서 일하느라고 벨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으니 맘 약한 자기가 맨날 문 열어주는 게 짜증 나는 것이다.

사모아에서 온 아크니스에게는 남편과 5명 자녀가 있고 모두 출가해서 뉴질랜드와 호주에 골고루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가까운 곳에 둘째 아들이 살고 있고 손주들이 4명 있는데 주말마다 집에 와서 북새통이라고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고 푸념을 하는데 얼굴은 미소 가득이다. 이제 은퇴하면 더 이상 일 하지 않고 손주들 돌봐주며 지낼 거라고 한다. 고향 사모아에는 일 년에 한 번쯤 다녀올 생각이라고 했다.

65살이면 아직 젊은데 왜 벌써 집에 가려고 하냐-!?라고 찔러보니 계속 일 할 수도 있는데 두 달 전에 새로운 매니저가 오면서 근무 시스템을 바꿔버렸다고 불만이 컸다. 그전에는 2가지 파트를 담당하며 하루 9시간씩 5일 일했는데, 이제 6시간만 배정했다고 한다. 사부작사부작 일하니 9시간도 일 할만했겠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비능률적이라는 게 보였겠지.. ㅡㅡ

너 그만두면 '타씨'-젊은 사모안 여직원-가 네 파트에서 일하면 되겠네 했더니... 타씨는 지금 사모아에서 방문한 엄마와 시간을 보내느라고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하고 있단다. 사모안 전통은 일보다는 가족을 우선시한답니다.

그리고 이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오드리'라는 할머니는 올해 74살. 일 하고자 하기만 하면 계속할 수 있는 것이죠. 하기사 내가 일하는 다른 매장에서는 바로 전날까지 출근해서 일하고 고령으로 죽은 사람도 있고, 지난주에는 80살 생일 파티를 한 직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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