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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조상님 묘지)

by 뉴질랜드고구마 2009. 7. 23.

2009년 6월 28일. 일요일.

 

 

내게로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2분, 할아버지, 큰아버지

이렇게 다섯분의 묘지를 이장하는 날입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올해가 조상님들 묘를 이장해도 크게 문제가 없는 '해'라고 하시는듯 했습니다.

 

오랫만에 전국에 흩어져 생활하고 있는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날 먹을 음식을 장만하느라 몇일 전부터 분주하셨습니다.

이른 아침 형님이 선발대로 내려가, 서울에서 오신 작은아버님과 수원에서 오신 큰집형님들과 만나

대산에서 부른 인부아저씨들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침밥 차분하게 먹고, 천막 등 이것저것 '행사진행'에 필요한 물품들과 음식물들을 차에 싣고

어머니, 누나 모시고 개똥이 엄마를 옆자리에 태우고, '계당'(고창군 성송면)으로 향했습니다.

광주에서 계당까지는 거의 한시간이 걸립니다.

 

어제 일기예보로는 오늘 바람이 심하게 불고, 많은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습니다. 바람이 조금 불고 구름이 잔뜩끼어있기는 하지만 비가 안오는 좋은 날씨..

... ...

 

조상님 묘지 이장은 여러군데 흩어져 있던 묘지들을 개장해서,

유골을 수습한 후 화장처리를 거쳐 몇해전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만들어 놓은 납골묘에 안치하는 순서입니다.

 

증조할아버지 묘소는 추산봉 아랫자락 절이 있는 부근인데, 도로에서 추산봉 절로 올라가는 산중 산길 아랬쪽 비탈면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아주 좋은 명당자리였다고 합니다.

오래전에 '고산' 중턱에 있던 증조할아버지 산소를 그곳으로 이장했는데, 묘소를 조성할 당시 묘자리를 파보니 바위가 전체적으로 깔려있어서 자리 잡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딱 한사람의 유골을 넣을 만큼 바위사이에 사각모양으로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가 좋은 자리라 생각하시고, 거기에 묘자리를 썻다고 합니다. 훗날 자손들에게 우환이 계속 되서 증조할아버지 묘자리가 좋지 않아서 그런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이장을 하려고 묘를 개장할 때 '하얀 기운'이 잔뜩 피어올라서 빠져나가버렸다고 합니다.

그 하얀 기운은 건너편 산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기운이 빠져나가 버려서 그 후 후손들이 더 좋은 일을 만나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시는것을 명절때 친척들이 모이면 듣곤 했었습니다.

이날도 술을 거나하게 걸치신 당숙께서 여러번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묘를 건드리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때 건드려서 우리들이 이렇게 어렵게 사는것 같다'고... ㅡㅡ;;

 

 

증조할머니는 두 분 이셨습니다.

큰증조할머니는 자손을 낳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번째 증조할머니가 들어오셨고, 우리들은 모두 두번째 증조할머니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큰 증조할머니 산소는 계당마을 앞쪽 밭에 여러 조상님들 묘소와 함께 있었습니다. 이장을 하는 과정에서 유골이 수습되지 못해서 납골묘에 모실때는 소지에 증조할머니 관련 내용만 적어넣었습니다.

두번째 증조할머니 묘소는 삼태마을 앞쪽에 예전명칭 '공동매' 앞쪽에 있었습니다.

(공동매->공동묘->공동묘지... 예전에는 그 너머에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증조할머니 묘소 바로 아래에 할아버지 묘소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묘소는 산과 밭의 경계부근에 있어서 칡넝쿨이 얽히고 설키는 그런 곳이였습니다.

우리가 삼태를 떠나올 무렵, 할아버지 묘소 바로앞에 교회가 생겼습니다.

'할아버지는 앞으로 심심하시지는 않겠네요'하고 생각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

할아버지 묘소 아래쪽에는 아버지 묘소가 있습니다.

아버지 묘소는 밭 가운데 있어서 묘를 조성할 당시 심었던 잔듸는 한두해 만에 잡풀에 치여 다 죽고,

그 후로는 잡초천지가 되어 일년에 두번 이상은 벌초를 해야 모양새를 확인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처음 묘소를 조성할 때는 주변 밭보다 높은 자리였는데, 지금은 밭가운데 움푹 들어간 형세가 되어 볼때마다 마음이 좀 불편한게 사실입니다.

이번에 이장할 때 같이 했으면 했는데, 아버지는 이번에 이장을 하면 좋지 않다는것을 어디서 보고 오셨는지 어머니 반대로 아버지 묘소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큰아버지 산소는 다시 추산봉 아랫자락에 있었습니다.

추산봉에 채석장이 들어서서 산을 다 베려놓고 있는데, 그 채석장에서 돌을 실어나르는 덤프트럭들이 다니는 길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이번에 가보니.. 이장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아버지 묘소 윗쪽과 옆쪽으로 묘가 서너게 있었는데, 올 봄에 축대를 새로 쌓고 묘소조성을 새롭게 했는지, 큰아버지 산소가 한쪽으로 밀려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구출해 드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 ...

 

점심 무렵이 되자 납골묘 주변이 친척들로 시끌벅적하게 되었습니다.

이장일을 맏은 일꾼아저씨들이 다섯분, 대전에서 오신 큰고모님과 고모부, 사촌누나와 동진이

제천에서 오신 작은고모님과 고모부, 서울작은아버지, 익산에서 오신 큰어머니, 수원큰형님과 형수님, 수원작은형. 고창에서 살고 계시는 사촌 형님과 조카, 초내에 살고 계시는 당숙, 계당에 살고 계시는 삼촌.. 신용계에 살고 계시는 사촌형님..

 

천막아래 포장을 펴고 어머니가 준비하신 추어탕으로 점심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개똥이 엄마는 오랫만에 야외에 나와서 심부름 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좀 안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작은누나가 함께 와줘서 완전 감사..

 

점심을 먹은 후 본격적으로 납골묘에 유골을 모시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작업 전에 묘소 전체적으로 풀을 베는 작업을 했습니다. 언덕베기에 있는 뽕나무 두그루가 너무 크게 자라서 그늘이 져보이길레 땀 찔찔 빼며 베어 넘어트렸습니다. 대전에서 온 동진이가 나보다 힘을 더 써서 쉽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벌초와 주변에 심어진 조경수 가지치기 하는 중]

 

[납골묘 봉분 부분에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 두분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묘소에 들어갈 지방을 쓰는 중.. 갑론을박.. ㅡㅡ;;]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유골을 넣고 봉분을 다시 쌓은 모습]

 [작업 끝나고 휴식중]

 

 [모든 일이 끝나고 제사 모시는 중. 수원 큰형님이 준비한 젯상]

 

 

[제천 작은고모와 고모부... 여전히 다정하신 두분. ^^;; ]

 

[아래는 동영상 촬영분입니다.]

1.납골묘에 유골을 모시는 순서에 관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