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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수에즈 폐쇄' 공포… 油價 100달러(북해산 브렌트유·배럴당) 돌파

by 뉴질랜드고구마 2011. 2. 2.

시위가 한창인 이집트.

1981년 대통령 자리에 앉은 후 30년 장기집권을 해온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하야성명을 발표했다는 기사가 나왔네요.

꼭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던 한국 상황을 보는듯 합니다.

이집트 민주화 시위를 바라보는 시각도 가지각색입니다.

여러 보도매체 중에서도 조선일보 기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집트국민들의 요구나 시위 이유같은것을 보도 할 필요도 없습니다. ㅎㅎ

'수에즈운하'에 대한 참고 글로만 스크랩합니다. 


[기로에 선 이집트]

1956년 '수에즈 폐쇄' 공포… 油價 100달러(북해산 브렌트유·배럴당) 돌파

운하 총파업 선언에 촉각… 폐쇄 가능성은 크지 않아
수에즈의 석유수송 비중도 당시 8.8%→1%대로 줄어

1956~57년 세계 경제를 강타했던 '수에즈 사태'의 악몽이 되살아날 것인가. 이집트 사태가 악화되면서 세계 원유시장이 공포에 빠졌다. 중동과 유럽을 잇는 동맥인 이집트의 수에즈운하가 반(反)정부 시위로 폐쇄되면 유럽으로의 석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0일(현지시각)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는 "수에즈운하 노동자들이 합류하는 무기한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 [조선일보]


총연장 164㎞, 수심 8m의 수에즈운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 이라크 등 중동에서 생산된 원유를 유럽으로 운반하는 주요 수송로다.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1.1%인 하루 150만배럴이 수에즈운하를 통해 운반된다.

수에즈운하의 원유 수송 비중 자체는 크지 않다. 하지만 수에즈운하가 폐쇄돼 육로를 통해 원유를 운반할 경우 열흘에서 2주 정도가 더 걸리고 운송 비용도 크게 증가한다. 이 경우 국제원유 가격의 상승폭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 벌써부터 국제 원유가격이 뛰고 있다.

31일(현지시각) 런던 석유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전날보다 1.59달러 오른 배럴당 101.01달러를 기록하며 2008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유 가격도 하루 만에 2.85달러(3.2%) 뛰어오르며 92.19달러로 마감했다.

유럽인들은 50여년 전 수에즈운하의 폐쇄로 혹독한 겨울을 맞은 추억이 있다. 수에즈 사태는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전격 선언한 후 이에 반발한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한 사건이다. 이에 맞서 이집트가 수에즈운하를 폐쇄하면서 중동에서 유럽으로 가는 석유공급이 큰 타격을 입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석유배급제가 실시됐고, 주유소와 공장은 가동을 멈췄다. 이번 이집트 사태와 관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이집트 항구 대부분이 작업을 중단했지만 수에즈운하는 군인들의 경계 아래 평소와 다름없이 선박들이 통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수에즈운하가 실제로 폐쇄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집트 정부가 지난해 수에즈운하 통행료로 52억달러를 벌어들이고 2만5000명을 고용하는 등 이집트의 기간산업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또 수에즈운하가 실제 폐쇄되더라도 국제 원유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과거보다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수에즈운하가 세계 석유 수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 '수에즈 사태' 때는 8.8%에 달했지만 지금은 1%대로 줄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까지 번진 민주화 열기가 중동의 주요 원유 생산국으로 번지는 경우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같은 나라의 정정(政情)이 불안해져 석유 생산에 타격을 입는다면 세계경제가 곧바로 오일쇼크에 빠질 수 있다.


퍼옴 :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원본글 : http://media.daum.net/foreign/africa/view.html?cateid=1045&newsid=20110202030903972&p=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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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무바라크, 빈곤층에서 대통령까지


[카이로(이집트)=AP/뉴시스】박준형 기자 =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장기집권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TV 연설을 통해 "이집트 땅에서 생을 마치겠다"며 대통령직에서 즉각 퇴진해 외국으로 떠나라는 반정부 시위대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하지만 "9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해 30년 장기집권은 막을 내리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1928년 5월4일 이집트 메누피아 나일강 삼각주에 있는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중하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 이집트 공군에 입대한 후 폭격기 조종사, 교관 등을 역임했다.

특히, 1973년 중동전쟁에서 공군 지휘관으로써 활약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75년 부통령에 임명됐고, 1981년 당시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1981년 10월6일 사다트 대통령이 카이로에서 군대 열병식이 진행되는 동안 군부 내 이슬람 과격주의자에 의해 암살되는 순간 사다트 대통령의 오른편에 앉아있었던 무바라크는 손에 작은 부상만 입고 목숨을 건졌다.

이집트 의회는 사다트 대통령이 숨지자 무바라크를 단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고, 무바라크는 같은 해 10월13일 98.5%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무바라크 대통령은 1984년과 1987년, 1993년, 1999년 이집트 의회가 선출한 단독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뒤 찬반 선거를 통해 자리를 지켰다. 1995년에는 이슬람 과격주의자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기도 했다.

2005년 그는 국내와 당시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압박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에 같은 해 9월 이집트 최초의 직선제가 도입됐으나, 무바라크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자격을 제한함으로써 또 다시 단독 출마해 당선됐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슬람 세력에 반대하고 친(親)서방 외교 정책을 펼쳤다. 미국과 동맹을 맺었으며, 1979년에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집트와 아랍권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을 불법단체로 지목했으며, 이슬람 테러리즘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특히, 그는 스스로 중동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장기간 독재를 유지한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집트의 안정과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국내적으로 빈곤과 실업, 인플레이션, 사회적 불평등 등의 문제를 야기했다.

결국 튀니지 정부 붕괴를 촉발한 '재스민 혁명'이 번지면서 경제 회복과 빈곤 퇴치, 일자리 창출 등을 요구하는 이집트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에 직면하고 붕괴 위기에 봉착했다.
j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