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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생활/Diary of Jung

교황을 닮은 부부 "가난한 마음은 잃고 싶지 않아요"

by 뉴질랜드고구마 2014. 9. 21.

교황을 닮은 부부 "가난한 마음은 잃고 싶지 않아요"

[교황방한]16일 광화문 시복식서 교황 가장 가까이 만나는 강지형·김향신씨 부부


"안녕하세요. 교황방한준비위원회입니다. 16일 프란치스코 교황 광화문 시복미사에서 예불 봉헌 가정으로 선정되셨습니다. 참여할 의사가 있으신가요?"

'조셉의 커피나무' 카페 공동대표인 강지형(56·세례명 요셉)·김향신씨(54·마리아) 부부는 열흘전 걸려온 전화를 무심코 받았다가 귀를 의심했다. 꿈에도 생각 못한 희소식이 갑자기 날아든 것. "내부적으로는 절차가 있었겠죠. 저흰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저희가 신청한 것도 아니고. 교황님 오신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게 가능한 지도 몰랐고요." 

시복식을 이틀 앞둔 14일에도 부부는 자신들이 어떻게 선정됐는지 전혀 모른다며 웃었다. 하지만 '낮은 자를 향한 나눔'을 실천한 그들의 삶은 교황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부부는 단칸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14번씩이나 이사를 다닐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만 신혼 때부터 나눔을 망설이지 않았다. "애기아빠가 돈을 떼서 주면서 '이 돈은 하느님 몫으로 남겨서 귀한 곳에 썼으면 좋겠다' 하더라고요. 난 '너무 좋은 일이다' 했어요. 굉장히 가난할 때라 지금보다 그때 돈 떼는 게 어려웠지 지금 떼는 게 어렵지 않아요. 그때 그 마음먹고 아무리 내가 어려워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위해 도와야겠다 다짐했죠. 이후에 다른 마음은 쉬웠던 것 같아요. "

부부는 매일 조금씩 뗀 돈을 모아 크리스마스에 불우이웃 돕기를 했다. 부인 김씨가 직접 움직이며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주변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니던 부부가 '기아 돕기'로 방향을 튼 건 우연한 계기였다.

"처음엔 크리스마스 때 우리나라 사람들만 도왔어요. 근데 어느 날 우연히 아프리카에서는 1000원이 없어서 아이들이 죽어간다, 일주일에 1000원이면 생명을 살릴 수 있단 얘기를 들었어요. 피부색은 달라도 다 같은 사람, 똑같은 자녀이지 않나."

1984년쯤 인사동에 처음 정식으로 전통찻집을 차렸을 때부터는 매일 첫 테이블 수입과 매달 첫 번째 금요일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 수입 전액을 모았다. 여러 복지회를 거쳐 1995년부터 천주교 사회복지회 한국카리타스에 기부를 시작했다. 나눔활동은 갈수록 확장됐다. 3년 전엔 '미카엘 나눔회'를 결성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대학로에서 벼룩시장을 열어 부부에게 기증된 헌옷과 신발 등을 판 수익금 전액을 전세계 기아들에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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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형·김향신씨 부부 /사진=홍봉진 기자

'나눔 에너지'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부부는 '신앙'과 '사랑'이라고 말한다. 남편 강씨는 2013 엔젤리너스 바리스타 챔피언십 심사위원장 등 다수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유명 바리스타지만 카페는 그의 원래 꿈이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천문학과를 합격해 학자의 꿈을 꾸던 그는 군대에서 무리한 훈련으로 치명적인 허리부상을 입어 수술후유증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애기아빠는 오직 꿈이 천문학이었어요. NASA 들어가고.. 근데 오래 못 앉아있게 되니까 좌절되고, 아이도 곧 태어나고 생활을 해야 하는데 할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다 당시 잘 아는 지인이 가게 차린 걸 보고 저거라면 할 수 있겠다고."

남편 강씨는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좌절을 이겨냈다. 군에서 시작한 신앙은 더욱 굳건해졌다. 결혼 후엔 자그마한 가게부터 진심을 다해 일했다.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것, 더 몸에 좋은 차를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끊임없이 커피 맛을 연구하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 뒤따랐다.

"신앙심이 없었다면 그 정도로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는 에너지가 안 나왔을 거예요. 그렇게 장사를 해왔어요. 직원들이 카페 차리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하면 서슴없이 말해요. '사람을 사랑해야 돼. 이웃을 내 몸같이 아껴줄 줄 알아야 돼. 그 열쇠면 풀면 다 풀려.'"

'들어오시는 분이 바로 그분(예수님)이시다.' 부부의 카페 카운터에 적힌 문구는 손님을 향한 이런 '진심'의 증거다. 손님들은 '따뜻하다', '평화롭다', '참 좋다'는 말을 한다. 마케팅이나 홍보도 없이 진실껏 커피를 만든 게 나눔의 원천이 된 셈이다. 인사동에서 찻집을 할 때부터 십자가를 내걸었다는 부부는 종교를 드러내는 데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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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시는 분이 바로 그분이시다'. 카페 입구의 글귀엔 손님 한 명 한 명을 향한 부부의 진심이 담겨 있다. /사진=박소연 기자

"여기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이지 천주교신자만, 그건 아니거든요. 예수님도 그 모두를 사랑하시는 분이지. 예수님이 차별하는 분이었다면 부끄러운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할 거예요. 근데 아니니까. 크신 분이니까. 교황님도 그릇이 크신 분이더라고요. 인간적인 분이고. 그러니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겠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구절을 실천해온 부부는 성북동에서 지금의 카페를 열고 벼룩시장을 시작하면서 봉사와 기부를 외부에 드러내게 됐다. 선행이 더욱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기도했죠. '혹여라도 자만해지지 않도록 겸손한 마음을 허락해주십시오. 제가 다 잃어도 괜찮지만 가난한 마음은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드러내면서 더 낮아졌어요. 더 얻는 게 많은 거예요. 더 자유로워지고, 누가 칭찬을 해도, 어차피 내 것이 아닌 거예요. 오히려 반대현상이 일어났어요."

부부는 이 모든 선행은 '용기'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성당을 다니기 전엔 선뜻 용기를 못 내다가 점차 자연스럽게 아, 해야 하는 거구나, 아름다운 거구나, 나누는 게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구나 알게 됐어요.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누구를 돕는 일을 용기내서 하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하다 보면 행복해져요. 행복하다 보면 자유로워지더라고요. 자유하다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요?"

부부는 이틀 뒤 시복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한다. 15일 전야제 리허설 때야 실감이 날 것 같다고 했다. "하느님이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잖아요. 말이 안 되는 말인데.. 용기 내 실천하면 가능한 것 같아요. 교황님도 기아나 어려운 사람들 말씀을 많이 하시잖아요. 방향성이 많이 와 닿아요. 기아 없는 세상을 위해서, 그날 무난히 잘 해낼 수 있도록 기도하며 담담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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