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 삼식아...
오랜만에 일하는 매장에 들려 이곳저곳 들려본 후 2층 직원 카페에 올라가 새벽 커피 한잔 하려는데 불이 다 꺼져 있습니다. 누가 자고 있나? 소파 쪽을 보니 코를 골며 잠자는 놈이 보입니다. 누구야?
반대쪽 불을 켜놓고 조용히 커피 한잔 탑니다. 언제 마셔도 좋은 새벽 3시 커피.. 머그컵에 커피 한 스푼, 초코 마일로 반 스푼, 거기에 뜨거운 물 80%를 담아 휘휘 저은 다음 탁자에 올려놓고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컵 목에 차서 넘칠랑 말랑 할 때까지 가득 부으면 커피 준비 끝입니다. 그런 다음 테이블에 앉아 컵을 들지 않고 입을 컵에 대고 호로록 일단 한 모금... 좋습니다. 여기에 아보카도 1개 곁들이면 새벽 간식입니다.
좀 있으니 다른 직원이 와서 소파에 누워있는 사람을 깨웁니다. 가만히 보니 피터네요. 삼식이 피터. 얼추 보면 나이는 사십대 초반으로 보입니다. 이곳 매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는 반년 정도 되었는데 처음 봤을 때는 박박 깎은 머리에 말이 거의 없고, 인사말을 건네도 답이 없어서 좀 무서워 보이기도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인사하면 대답은 하더이다. 그 후 여기에 올 때마다 보면 다른 직원들이랑 떨어져서 혼자 일하고, 어쩔 때는 구석진 곳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기도 해서 정상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어느 날은 새벽에 엠블런스가 주차장에 들어오고 구급요원들이 가방을 들고 매장 안으로 급히 들어오길래 뭔 일인가 물어보니 어떤 놈이 퍼블릭 화장실에 쓰러져 있다고 합니다. 이 새벽에 쇼핑객은 없고 직원들만 있는데 무슨 일일까 궁금합니다. 매니져에게 물어봐도 더 이상 답을 안 해줍니다. 며칠 뒤 물어보니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왕따 시키고 곤란한 일만 시키는데 화가 난 피터가 매장 술 창고에 있던 술을 심하게 마시고 화장실에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 통 안보이던 피터 잘렸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후부터 다시 일하기 시작하네? 아무래도 피터 자기 잘못은 아니었으니 서로 양해하기로 했나 싶습니다. 그 후로 직원들도 피터를 더 배려하는 것 같고, 나이트 매니저만 가지고 있는 매장 출입센서 키도 피터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 피터가 소파에서 코 골며 잠들어 있던 것입니다. 야 뭔 일이냐? 물어보니 배가 심하게 아프다고 합니다. 아까 12시 브레이크 때 카페 테이블에 있던 땅콩 스낵을 한 봉지 다 먹었다고 합니다. 그게 곧바로 탈을 일으킨 거지요.. 애라 삼식아...따뜻한 물 한잔 마시고 더 누워있어라 하니, 그 말은 잘 듣네요. 얼른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소파에 누워 코를 곱니다. ^^;;
땅콩에는 지방이 많아서 한꺼번에 많이 먹을 경우에는 곧바로 설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고 체험을 통해서 터득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땅콩을 먹어도 10알 이상은 먹지 않고, 땅콩 친구처럼 생긴 열매나 알맹이는 예를 들자면 아몬드같은 것은 가급적이면 한주먹 이상 먹지 않습니다.
어릴 적 여덟 살 때쯤 시골에서 추석 무렵입니다. 아침 일찍 우리 집 추석 음식 준비를 마친 어머니께서 추석 때 손님들 오면 입가심하시라고 마련하셨던지 땅콩을 한솥 볶으셨습니다. 그리고 한주먹 주시면서 놀면서 먹어라 하고 건넛마을 할머니 댁에 바삐 가셨습니다. 오랜만에 간식거리가 생겨서 좋았던지 날름 다 먹고, 어머니가 채반에 담아 놓은 땅콩을 몇 줌 더 즐겁게(?) 먹었지요. 그 해 추석은 거의 화장실에 앉아서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은 대학 1학년 봄 무렵인 것 같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 안전요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해태 타이거즈와 어떤 팀이 경기를 하는데 내가 맡은 임무는 야외 출입구에서 표 검사하는 거였습니다. 표검사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과 경기 초반에 입장객이 많이 몰릴 때만 바빴고 경기 중후반으로 가면 일이 거의 없어 관중석 한쪽에서 경기를 구경하기만 하면 되는 아주 꿀잼 아르바이트였습니다. 그날은 안전요원들 심심하지 마라고 서비스 차원에서 '해태 맛동산'을 몇 박스 놔두고 먹고 싶은 사람은 가져다가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공짜 야구 관람에 공짜 간식까지... 봄이라 날씨가 쌀랑했고 비도 약간 오락가락했던 것 같은데 그날 맛동산 큰 봉지를 신나게(?) 다 먹었습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화장실에 들어앉아서 거의 밤을 새웠던 것 같습니다. 삼식이였지요.
다섯 시가 다돼가는 시간 일 마치고 매장을 나오려는데 피터도 집에 가려는지 엉거주춤 걸으며 밖으로 나옵니다. 좀 괜찮냐고 물어보니 부풀어 오른 배를 살살 쓸며 곧 뭔가 나올 것 같다고 합니다. ㅡㅡ 피터 너 어디서 왔어? '통아'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어? 나 여기 뉴질랜드에서 태어났어. 옆에 있던 직원이 한마디 거듭니다. 피터 가족이 통아에서는 왕의 가족이라고... 일명 왕족인 게지요. 통아에서 왕족이면 뭐하냐? 바지에 똥 싼 아이처럼 엉거주춤 걸어 나가는 피터를 보니 왠지 측은하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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