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건국 이후 중동 지역 이민자 우경화의 토대
I 사회주의 성향 노동당 주도 이-팔 평화협상 반대
I 소련 붕괴 뒤 러시아계 유대인 우경화 재촉
I 우경화 주역 네타냐후, 복귀로 ‘극우화’ 완성
이스라엘 사상 가장 극우적이란 평가를 받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새 내각이 지난달 29일 출범하자마자 중동 내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새 극우 연정은 출범 나흘 만인 2일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국제공항을 공대지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시리아군 2명이 숨지고 공항 기능이 마비됐다. 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북부 도시 제닌 인근 마을을 공격해 주민 2명을 사살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극우 연정은 지난달 28일 공개된 ‘연정 합의서’에서 자신들이 추진할 최우선 정책으로 “이스라엘 땅의 모든 지역, 즉 갈릴리, 네게브, 골란고원, 유대·사마리아에서 정착촌 진전과 개발”을 약속했다. 특히, ‘유대·사마리아’는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를 일컫는다. 국제사회는 서안지구에 대한 정착촌 확대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술 더 떠 새 내각의 치안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46)는 3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의 뇌관 지역인 예루살렘의 무슬림 성소 알아크사 사원 지구를 방문했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등 이스라엘 현지 매체는 2일 벤그비르 장관은 네타냐후 총리와 면담 뒤 당분간 이 지역을 방문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으나, 벤그비르는 방문을 강행했다.
인종주의와 테러단체를 지원한 혐의로 기소된 경력이 있는 벤그비르 장관은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해 “이제 유대교도도 이곳에 가게 될 것이다. 위협하는 자는 엄격하게 다룰 것이다”라고 말했다. 20여년 전인 2000년 9월 아리엘 샤론 당시 총리가 알아크사 사원을 전격 방문하며 중동은 2차 인티파다(민중봉기)라는 큰 혼란을 겪었다. 그 여파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약속한 오슬로 평화협정(1993년)이 파탄 나고 양쪽의 대립이 격화됐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네타냐후 (총리)는 알아크사 사원에 대한 이번 공격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나치 등 인종주의 세력에 희생된 유대인들의 피와 뼈로 세워진 이스라엘은 건국 74년이 지난 뒤 왜 ‘극우화’의 길을 가게 된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주민의 구성 변화와 그로 인해 촉발된 팔레스타인과 분쟁 흐름을 살펴봐야 한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이자 15년간 총리를 지낸 다비드 벤구리온 전 총리(노동당)는 동유럽 유대인 사회주의 운동인 분트(Bund·유대인 조직) 출신이다. 이스라엘 건국의 주역들은 그와 비슷한 사회주의 성향의 노동시오니즘 세력이었다. 벤구리온 전 총리가 20세기 초 건국 운동을 벌일 때 이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고대 이스라엘 주민의 후예라며 서로 공존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건국을 반대하자 이들을 축출하고 나라를 만들었지만 ‘원죄 의식’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네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에서 이기며 당면한 안보 위협에서 해방된 뒤, 1970년대 중반부터 아랍 국가들과 관계 정상화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도 나서게 된다.
그와 동시에 노동당은 급격히 힘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노동당이 처음 우파 정당인 리쿠드당에 정권을 내준 것은 1977년이었다. 4년 전 창당된 리쿠드당이 약진한 가장 큰 배경은 유권자 구성의 변화였다. 이스라엘은 중부와 동유럽 출신 유대인을 뜻하는 ‘아슈케나지’가 건국했고, 이들은 이후 이슬람권 유대인들을 급속히 받아들였다. ‘세파르디’라 불리는 이들은 지중해 지역 유대인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이스라엘에서는 중동 지역 출신 유대인을 가리키는 용어로 굳어졌다.
건국 직전 유대인 인구는 65만명이지만, 건국 직후인 1949~1952년까지 약 50만명의 이민자가 들어와 하류층을 형성했다. 아랍어 등 현지어를 쓰는 유대교도였다. 이들 세파르디는 이스라엘에 정착하며 ‘유대 민족’의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경제·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이들은 이스라엘이 건국 전쟁 때 빼앗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거주지에 터를 잡았다. 당연히 노동당이 추진한 점령지 반환 정책 등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1977년 총선에서 세파르디의 노동당 지지율은 32%에 불과했다. 정권 교체를 이끈 이들이 이스라엘 우경화의 주역이 된 것이다.
그 뒤 진행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협상은 번번이 점령지 내 정착촌 문제로 좌초됐다. 리쿠드당 정부는 꾸준히 정착촌 확대 정책을 추진해간다. 1991년 말 소련 붕괴로 러시아계 유대인 70만명이 이민 오며, 리쿠드당과 극우 유대주의 정당들은 힘을 키워갔다. 오슬로 협정을 주도한 노동당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1995년 11월 극우분자에게 암살된 뒤 다음해 치른 총선에서 리쿠드당의 네타냐후 총리가 집권했다. 노동당은 1999년 마지막으로 집권했지만, 샤론 총리가 알아크사 사원 방문으로 불 지핀 2차 인티파다에 이은 오슬로 협정의 파탄으로 실각한 뒤 군소정당으로 몰락했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이들이 얻은 의석은 4석에 불과하다.
네타냐후 총리는 2009년 이후 2021년까지 장기 집권하며 벤구리온 전 총리를 능가하는 최장수 총리로 군림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부패 혐의와 그가 주도한 우경화에 대한 피로감에 이스라엘 사회는 분열돼, 2019년 4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무려 다섯번이나 총선을 치렀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네타냐후 총리는 가장 노골적인 유대주의 극우정당들과 함께 복귀했다. 이스라엘 우경화를 낳은 유대주의 극우세력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이 사회의 주류가 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1074273.html?_ga=2.202801809.1468446817.1672802389-817153379.167280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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