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북부 지역에서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코소보인 사이의 민족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코소보 총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분쟁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알빈 쿠르티 코소보 총리는 세르비아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북부 지역의 ‘차량 번호판’을 둘러싼 민족 갈등을 계기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사 도발 행위를 발칸반도로 확대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고 영국 <가디언>이 2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북부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열흘 넘게 도로를 봉쇄하며 치안 공백이 이어지고, 이들의 뒷배가 되는 세르비아가 주민 보호를 내세워 군대 파견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나왔다. 코소보는 전체적으로는 알바니아계가 절대다수지만, 북부는 대부분이 세르비아계이다.
쿠르티 총리는 이 매체 인터뷰에서 “유럽과 미국은 북부 지역을 막고 있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바리케이드를 제거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며 그들은 세르비아가 이 사태를 어떻게 활용할지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서방국들이 우려하는 점은 세르비아와 러시아의 연결 고리”라며 “러시아가 세르비아군을 통해 전쟁 도발 행위를 발칸반도로 확대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이 우려하는 바”라고 설명했다.
범슬라브주의로 묶여 있는 세르비아는 지난해에만 러시아군과 104번이나 연합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긴밀하게 협력하는 중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러시아는 이 지역 분쟁은 외교적 수단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면서도 세르비아계 주민의 완전한 권리 보장을 강조하고 있다.
쿠르티 총리는 갈등을 고조시키지 않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평화유지군에게 주민 설득 작업을 맡겼으며 봉쇄가 풀리는 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태 악화가 없도록 신중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법 위반 행위를 영원히 용납할 수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코소보는 1992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붕괴하면서 분리 독립한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등과 달리 계속 세르비아의 지배를 받다가 1998~1999년 코소보 전쟁 이후 유엔 통치를 받는 자치 지역이 됐다. 2008년 2월 정식 독립했지만, 코소보를 ‘민족의 발원지’로 여기는 세르비아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코소보 북부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독립 이후에도 사실상 자치 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 지역에선 민족 갈등으로 인한 긴장이 이어져 왔지만, 국제 사회가 우려할 수준까지 악화하는 일은 드물었다. 갈등이 재연된 것은 지난 7월 코소보 정부가 세르비아계 주민들에게 세르비아에서 발급한 차량 번호판 사용을 금지하고 코소보 번호판을 달게 하는 조처를 발표한 뒤다. 이를 민감한 주권 문제로 받아들인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곳곳에서 항의 시위를 시작했다. 세르비아계 경찰 600여 명과 판검사들도 코소보 정부의 조처에 항의해 집단 사퇴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유럽연합이 중재에 나서, 지난달 말 코소보는 차량 재등록을 중단하고 세르비아는 향후 새 번호판을 발급하지 않기로 하는 타협이 이뤄졌다. 이로써 평화가 회복되는 듯 보였으나, 집단 사퇴한 경찰 중 한 명이 지난 9일 경찰 순찰대를 공격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사태는 다시 악화됐다.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10일부터 이 지역으로 진입하는 도로를 트럭 등으로 차단하고 경찰 등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충돌이 이어지자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지난 16일 세르비아계 주민 보호를 내세워 자국군 1천 명을 코소보 북부에 배치하겠다고 나토에 요구했다. 1999년 맺어진 평화협정과 유엔 결의안에 근거한 요구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재 현지에는 3700명 규모의 나토 평화유지군과 유럽연합 소속 경찰 130여 명이 순찰 활동 등을 하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기사원문 : 한겨레 /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725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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