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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생활/Diary of Jung

중노동 공부 뒷전 ‘김씨 호주 표류기’[퍼온글:경향위클리]

by 뉴질랜드고구마 2010. 6. 2.

신문기사를 보다가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글이 있어서 읽어 봤습니다.

호주와 관련 된 글이기는 하나 이곳 뉴질랜드 상황과도 별반 다를것이 없는 내용이네요.

참 씁쓸하기 그지 없습니다.


부디 워킹홀리데이나 유학이나 이민 오시려는 분들은...

유학원이나 이민관련 업체 말속에서 정보를 찾을것이 아니라,

현지 상황에 대해서 객관적인 정보를 찾아보시고 결정하셨으면 하네요.

... ...


ㆍ26세 대졸 여성 워킹홀리데이 체험

"일하며 어학연수 난망"



↑ 농장 일은 식당 서빙보다 훨씬 힘들다. 사진은 호주의 한 농장 전경. |경향신문


지난해 7월 호주에서 한국인 2명이 죽고 2명이 실종됐다. 한 명은 시드니 시내 한 쇼핑센터 옥상에서 몸을 날렸다. 다른 한 명은 퀸즐랜드 지역에서 음주운전 차량을 타고 가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 두 명은 뉴사우스웨일스주 스탠브리지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차를 타고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 세 사건 모두 공통점이 있다. 사고는 모두 현지 시간으로 7월 22일 새벽에서 오전 사이에 일어났다.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네 사람 모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입국한 20대다.

"소식 들었어? 사람이 죽었대." 언제 잠들었을까. 김상아씨(가명·26·여)는 친구의 전화에 잠을 깼다. 오전 2시다.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에 비친 사진 속 그들의 얼굴이 자신만큼이나 앳되다. 뉴스에는 그들이 왜 죽었는지, 어쩌다 실종됐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워킹홀리데이'라는 말에 막연히 짐작했다. 그들도 한국에서 '알바'를 했을 것이다. 학점과 등록금 사이에 낀 몸을 굴려가며 '스펙'을 만들고 이력서를 썼을 것이다. 영어라도 해야 졸업하고 취직해서 학자금대출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김씨는 호주에 온 이래 날마다 써 온 일기장을 펼쳤다. "학비 걱정, 일자리 걱정 없이 이제 좋은 곳에서 편히 쉬길."

언어장벽 현지인 업소 구직 어려워

넉 달쯤 전인 3월 31일 김씨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들고 호주행 비행기를 탔다. 친구 두 명과 친구의 동생 한 명도 함께였다. 비자 신청 대행 사이트에서 비자를 신청하고 신체검사 확인증을 보낸 뒤 비자를 받는 데 열흘쯤 걸렸다. 한 달 전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집에만 있으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학점과 취업이라는 이름으로 그 또래 젊은이들을 짓누르는 경쟁의 압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서 돈을 벌어 아시아 여행을 가겠다는 친구의 말에 호주행을 결정했다.

20대 한국인 워홀러(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온 이들)는 대부분 여러 명이 한 집에서 산다. 이런 숙소를 '셰어'라고 부른다. 집주인은 대부분 현지 교민이나 유학생이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라면 셰어 형태로 지낼 수밖에 없다. 사실 부자라면 워홀러가 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김씨와 친구들은 방 하나에 네 명이 지냈다. 우리 돈으로 매달 42만원을 냈다. 그곳에서 한 달 보름을 지냈다. 그 다음에 간 곳은 아파트 23층 '거실'이었다. 아파트 거실에 파티션을 치고 임대하는 형태다. 방보다 비용이 덜 드는 대신 다른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워홀러들이 호주인 매장에서 일하기는 쉽지 않다. 언어 장벽 때문이다. 임금은 현지인 매장에서 일하는 경우(약 17달러)의 절반 수준이지만 영어에 자신이 없다면 교민 구인사이트를 뒤지게 된다. 20대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식당일, 매장판매원, 청소부 같은 단순 저임노동이다. 김씨는 몇 군데 면접을 봤다. 그 가운데 한 곳은 한인 PC방 카운터 알바였다. 사장 대신 알바생이 이력서를 받았다. 이력서를 두고 나오려는데 그가 물었다. "토익점수가 몇점이에요?" 어느 일식당 한국인 매니저는 "한국에서 대학 나와서 왜 이런 일 구해요"라고 물었다.

'워홀러'저임금 이주노동자 신세?


김씨는 시드니 킹스크로스에 있는 주스 가게에서 첫 일자리를 구했다. 직원이 한 명뿐이어서 첫날 4시간 일하는 동안 화장실에 갈 수 없었다. 이전 근무자는 "6개월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손끝이 무딘 김씨는 이틀 동안 7시간 일하고 잘렸다. 7시간이면 70달러다. 그러나 35달러만 받았다.

사장은 "트레이닝 기간에는 5달러만 준다"고 했다. 채용할 당시에는 듣지 못한 말이다. 호주에서는 임금을 주 단위로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한인 업소에서는 2주에 한 번 주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주기도 한다고 김씨는 말했다.

한 군데 더 퇴짜를 맞은 김씨는 웨스트필드의 한 쇼핑센터 내 초밥집에 일자리를 구했다. 트레이닝은 단 이틀. 트레이닝이 끝나면 시급 9달러다. 가게가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10시. 그러나 일은 오전 7시30분부터 시작됐다. 문을 열기 전에 1층에서 20㎏들이 쌀 한 부대, 채소, 김과 식초, 손질한 연어 등 그날 쓸 식재료를 4층 매장으로 옮기고 밥통에 20㎏ 분량의 밥을 한 다음 일식 롤을 말 준비를 끝내야 한다. 10시부터 장사를 시작하면 롤을 마는 일의 연속이다. 앉을 수 없다. 점심시간도 따로 없다. "아침은 먹고 나오고 점심은 오후 두세 시쯤 짬이 날 때 눈치껏" 먹었다. 김씨는 이렇게 오후 4시까지 3개월 일했다. 어느날 매니저가 정시에 출근한 그에게 늦었다며 주의를 줬다. "7시 30분까지 출근하면 안 돼. 1층에서 식재료를 가져와 4층에 오는 시간이 7시 30분이어야지." 3개월이 지나자 몸에 탈이 났다. 김씨가 한국에서 한 알바들은 이런 종류의 풀타임 육체노동이 아니었다. 한국의 여름이 겨울인 그곳에서 한참 동안 감기가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김씨의 친구는 길에서 쓰러졌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별다른 처방도 받지 못하고 병원비로만 우리 돈으로 100여 만원을 날렸다.

김씨는 시드니에 있던 석 달 동안 일을 하나만 했다. 어학연수가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경우에는 대개 일을 두 개씩 한다. 그러니 주중과 주말의 구분이 있을 리 없다. 게다가 한인 가게는 연중무휴다. 김씨는 "내 또래의 어느 여성은 오전 6~10시 아파트 청소, 오후 1~7시 식당일을 하고 오후 9시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또 다른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일해서 돈을 벌며 영어도 배운다'는 것 또한 말처럼 쉽지 않다. 한인 가게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경우 대개는 체력이 달려 공부할 여유가 없다. 김씨는 "일을 2개씩 3개월만 하면 몸이 바스러진다. 경험 삼아 해 볼 수 있는 정도의 노동이 아니다"면서 "그래도 같은 일을 한국에서 하는 경우보다는 두 배 가까운 임금을 받기 때문에 안 먹고 안 쓰면서 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김씨는 시드니를 떠나 농장에서도 일해 봤다. 딸기 농장이었다. "설마 이보다 힘들까"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오전 6시 30분부터 8시간 동안 일했다. 둘째 날부터 신음이 절로 나왔다. 시급은 시드니 시내에서 일할 때보다 두 배쯤 많았지만 나흘째 되던 날 결국 딸기 농장을 떠났다.

김씨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소개한 책들을 보면 '꿈' '열정' '도전' 같은 말들이 나온다. 하지만 내가 겪은 워킹홀리데이는 호주 저임노동의 바닥을 받쳐주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시드니 주재 한국총영사관이 올해 2월 16일에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2009회계연도(2008년 7월~2009년 6월)에 전 세계 18만7696명에게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했다. 그 가운데 한국인은 3만9506명으로 전체의 21%를 차지했다. 2008회계연도보다 21% 증가한 수치다. 김상아씨는 지난해 10월 7일 한국에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던 날 또다른 20대들이 호주를 향해 떠나고 있었을 것이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