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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생활/Diary of Jung

우리집 닭은 죄가 없습니다.

by 뉴질랜드고구마 2013. 11. 7.

1.

treadme에서 닭을 찾았습니다.

3마리.. $15에 샀는데,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1시간 가량 픽업을 가야합니다.

닭 전주인은 treadme에 닭을 팔면서 한가지 전제를 달았습니다.

'절대 잡아 먹지 않을 사람이 구입해야 합니다.'


(2)

비스킷이 버리고 간 집을 재활용해서 닭장으로 쓰기로 합니다.

우리 윗집에서 이사 가면서 다현이한테 선물로 주고 간 토끼, 비스킷이 토끼장 안에만 있는것이 너무 답답해 보여 뒷마당에 울타리를 만들고 풀어 놨습니다. 하루만에 탈출을 해서 뒷마당 전체를 뛰어 다닙니다.

겨우 잡아서 넣기를 몇번... 어느날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3)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앞마당에서 비스킷이 풀을 뜯어 먹고 있습니다. 2주 전에 사라졌던 토끼가 말입니다.

나를 보더니 살살 도망치듯 달리기 시작합니다. 마당을 벗어나 자기가 살고 있느곳을 알려주겟다는듯... 

우리집 옆집에 옆집, 옆집 5번지로 들어갔습니다. 


4. 

토끼가 사용했던 우리에 닭 3마리를 넣으니 좁은 공간에서 왔다갔다 어쩔 줄 몰라합니다.

주방에 있는 보리쌀을 한그릇 담아다 뿌려주니 환장을 하네요.

전 닭주인 말로는 일주일 정도 새로운 집에 적응 해야하고 그러면 다시 알을 낳기 시작 할꺼라 합니다.


5.

우리집에 온지 이틀만에 알을 낳았습니다. 

2개.. 닭은 3마린데 알이 2개. 어떤 놈이 무전취식을 하나 봅니다. 아니면 격일로 알을 낳던지...

아뭇튼 슈퍼에서 한판씩 사다먹던 달걀만 보다가 직접 낳은 따끈한 달걀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다현이 손바닥에 따끈한 달걀을 올려주니 감격을 합니다.

어릴때 허청에서 달걀을 수거해 오면 아버지는 앞니로 탁탁 깨서 후루룩 하셨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6.

닭장에만 있는 닭들이 안쓰러워 중대 결정을 했습니다.

뒷마당 전체를 닭들에게 내주기로 한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었음을 몇시간 만에 알 수 있었습니다. 봄 농사를 준비하던 텃밭을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왕 버린몸...몇 일 귀찮아서 그냥 두었더니 뒷마당 전체가 지뢰밭이 되었고, 심지어 부엌으로 올라오는 계단 층층이 물똥을 걀겨 놓고, 날이면 날마다 부엌문 바로 아래 계단에 자리를 잡고, 쉬는 바람에 빨래 널로 나가는 아내로 부터 민원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7.

다시 우리안으로 닭들을 철수 시켰습니다.

몇일 동안 비가 몇 번 내리고 나서야 뒷마당 이곳저곳에 수북했던 닭똥들이 씻겨 나갔습니다. 

그러나 봄 미각을 돋궈주길 기대했던 참나물, 취나물, 돋나물 밭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심지어 울타리 구석에 있던 미나리 밭까지 자갈밭으로 변해버렸습니다.


8.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오후에 학교 다녀오면 한 번 밥그릇으로 모이를 퍼다 뿌려주던 다현이도 이제 시들해졌습니다. 처음 닭들이 우리집에 오던 날 닭 사료가 필요했습니다. 근데 시간이 늦어서 하루만 참았다가 사료를 사러가자 했다가 눈물 바람을 하더니 말입니다. 

이제 닭도 그저 그렇고, 날마다 나오는 달걀도 그저 그런가 봅니다.


9.

우리집 닭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착각을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닭들은 사람이 다가가면 멀찌감치 도망가기 마련인데, 우리집 닭들은 딱 꿇어 앉습니다.

그리고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립니다. 고양이 목을 긁어주면 그륵그륵 하듯 소리를 내는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기분이 좋은듯 쓰다듬어 주는것을 즐기는것 같습니다.

아마 병아리때부터 살았던 집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들이 집안에서 기르는 애완동물들 처럼 대접을 해줬나 봅니다. 

우리집에서는 택도 없습니다.


10

또 닭이 착각하는것이 있습니다. 모두 알을 낳는 암닭임에도 불구하고 한놈은 숫놈 흉내를 냅니다.

어떤 무리에나 대장은 있습니다. 우리집 닭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벼슬이 제일 멀쩡하게 생긴놈이 대장입니다. 그리고 벼슬이 조금 찌그러진놈이 no.2, 벼슬이 볼품 없이 찌그러진놈이 막둥이입니다.  이건 굳이 벼슬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모이를 뿌려주고 잠깐만 보고 있으면, 대장은 무조건 들어갑니다. 중간치는 살살 눈치만 보고.. 막둥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습니다.

근데 이 대장놈이 어찌나 울음 소리를 시끄럽게 내는지 모릅니다.  

숫탉 회치는 소리는 저리가라 할 정도 입니다. 이게 나름 스트레스입니다.


11.

닭 우는 소리가 드디어 사고를 쳤습니다.

뒷마당에 나가 텃밭을 돌보고 있는데 나를 보고 시위하듯 울어대기 시작합니다. 자기들을 울타리 안에 가둬뒀다고 시위합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면 울기를 멈추고, 안 쳐다 보면 울고.. 

나랑 장난하는것도 아니고.. 날도 더운데 너무 시끄러워서 이것들이 나를 테스트 하나 생각이 확 듭니다.

순간 작은 막대기를 하나 집어서 닭우리를 향해 던졌습니다.

그러나 분노에 힘이 손에 너무 많이 들어갔던지.. 막대기는 픽사리가 나서 텃밭을 향해 날아갔고...

다현이가 심고 물주며 보살펴서 제법 크게 자란 완두콩대 목아지를 자르고 말았습니다. ㅡㅡ;;


12.

금동이가 집에 오고 분주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뭘 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이 시간이 지나갑니다. 

그래도 챙길것은 챙긴다고 닭장에 있던 닭들을 뒷마당 우리에 내어놓고 샤료 한사발 뿌려줬습니다. 

다현이 학교 내려주고 슈퍼에 들려 반찬거리 몇가지 사가지고 집에 왔습니다.

주방에서 일하는데 이쯤이면 울타리가 답답하다고 울어댈 닭들이 조용합니다. 아뿔싸...

울타리 문이 열려 있습니다. @@

바쁘게 나가면서 문을 닫지 않은것입니다.

닭들은 물을 만난듯이 여러가지 야채들이 막 자리잡기 시작한 텃밭 한쪽을 완전 뭉개놨습니다.

순간 눈에서 레이져가 나오고 막대기 집어들고 닭들을 몰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닭들은 동작이 빨라 몇대 안 맞고 닭장 안으로 몰려 들어갔습니다. 

처음 분위기 같았으면 제대로 걸린놈 한마리는 오늘 저녁 밥상에 올라왔을 것입니다. 


13.

어제 닭들에 의해서 죽사발이 된 호박모종이며 상추며, 완두콩 들을 손봤습니다.

흙을 긁어 뿌리를 덮고 물을 흠뻑 줍니다.

완전히 죽어나간 놈들을 보면 여전히 분노가 치밀기는 하지만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합니다.

'닭들이 뭔 죄가 있나 문 닫는것을 잊어버리고 나간 내가 잘못이지'


14.

우리집 닭들은 알이라도 잘 낳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닭 소식은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 곧 꽃이 필듯 했던 완두콩들이 다 자빠졌습니다.

@ 상추밭도 요모양이 되었고요..

@ 뭔일있었나?! 두리번 두리번 하는 닭들..

 @ 그 와중에도 알은 낳았습니다. 2개만 낳던 놈들이 분위기 파악했나봅니다. 각 1개씩 낳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