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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생활/Diary of Jung

인도와 중국 국경분쟁

by 뉴질랜드고구마 2017. 8. 14.

인도와 중국 국경분쟁


@ 네팔과 부탄 사이에 있는 시킴이라는 지역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

@ 인도와 중국은 시킴을 비롯해서 크게봐서 3지역에서 대립하고 있습니다.

@ 인도 입장에서도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분쟁지역.


사연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도 오랜동안 묵혀온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크게 보면 국경분쟁이고 민족 문제도 있고, 그 전 제국주의 문제도 있네요. 아무쪼록 큰 충돌없이 사태가 일단락 되어야 할것입니다.


용과 코끼리의 대력이라는데 서로 자존심을 좀 내려놓으시길...

아래글은 [조선맴버스]에 실린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숨어있는 세계사 13억 vs 13억… 두 大國의 55년 묵은 갈등

입력 : 2017.07.13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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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도 국경 분쟁] 

과거 큰 충돌 없었던 중국과 인도
中이 무력으로 티베트 점령하고 인도, 달라이라마 받아주며 대립
1962년 결국 중-인 전쟁 발발… 중국 얕잡아봤던 인도군 크게 패해
최근 국경에서 또 긴장감 높아요

인구가 각각 13억7000만명, 13억3000만명에 달하는 중국과 인도가 국경 분쟁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두 대국(大國)의 규모에 비하면 너무나 조그마한 땅 때문인데요. 중국·인도·부탄 등 세 나라가 만나는 도카라(중국명 둥랑) 지역에 중국 인민해방군이 도로를 부설하면서 갈등이 시작됐어요. 인도와 부탄은 중국이 도로를 부설하고 있는 이 지역이 부탄 영토라며 중국에 공사 중단을 요구했어요. 반면 중국은 자국 영토에 정당하게 도로를 놓았을 뿐이라며 오히려 인도군이 중국 영토를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했죠. 양국은 국경 문제로 55년 전 이미 한 번 중-인 전쟁을 벌인 적이 있어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두 나라는 왜 서로 으르렁대는 것일까요?

◇국경 분쟁의 씨앗을 뿌린 영국

역사적으로 중국과 인도는 충돌했던 적이 거의 없었어요. 두 나라 사이 티베트가 있어서 양국은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았던 덕분이죠.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중국 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장악하고 티베트를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중국과 인도가 직접 서로를 마주하게 됐어요. 이후 두 나라의 관계는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죠. 과거 제국주의 열강이 제멋대로 그려놓은 국경이 혼란을 초래했기 때문이에요.

사실 두 나라 사이 국경 문제는 제국주의 시절 영국에 의해 씨가 뿌려졌습니다.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자기들 멋대로 중국의 변경을 점령했었어요. 그 영토가 그대로 인도령으로 남아 1950년대까지 중국과 인도는 국경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있었죠. 냉전 초기엔 인도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비동맹'이라는 중립 노선을 택하고, 중국 역시 소련과 갈등이 발생하면서 비동맹 노선에 발을 걸치면서 양국은 겉보기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어요.

인도와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인도 시킴주(州)의 ‘나투 라’ 국경 검문소에서 양국 군인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어요. 해발 4500m의 고산에 있는 나투 라 고개는 과거에도 인도와 중국을 잇는 주요 통로였으나 1962년 중-인 전쟁 이후 국경이 폐쇄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다닐 수 없었죠. 양국은 2006년 관계 개선의 제스처로 나투 라 검문소를 열고 통행을 재개한 바 있는데, 최근 또 국경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어요.
 인도와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인도 시킴주(州)의 ‘나투 라’ 국경 검문소에서 양국 군인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어요. 해발 4500m의 고산에 있는 나투 라 고개는 과거에도 인도와 중국을 잇는 주요 통로였으나 1962년 중-인 전쟁 이후 국경이 폐쇄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다닐 수 없었죠. 양국은 2006년 관계 개선의 제스처로 나투 라 검문소를 열고 통행을 재개한 바 있는데, 최근 또 국경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어요. /AFP

그나마 유지되던 우호 관계가 틀어진 것은 1950년대 말이었어요.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은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티베트로 이어지는 도로 '신장공로'를 놓았어요. 이 도로는 중국과 인도 양쪽이 모두 영유권을 주장하는 '악사이친'이란 지역을 지나갔어요. 중국이 인도와 상의도 없이 도로를 부설하자 인도인들은 분노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중국 공산당의 티베트 탄압이 극에 달한 1959년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티베트를 탈출해 인도로 망명했어요. 그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임시정부를 선포했죠. 인도의 네루 총리가 달라이라마의 인도 망명을 받아들이자 이번엔 중국인들이 격분했어요. 중국과 인도 국경에서 소규모 충돌이 잦아진 건 이때부터예요.

◇중국에 완패한 인도

중국-인도 국경 분쟁 지도

당시 인도에선 현실적으로 인도가 중국에 무력으로 맞서기 어려울 것이라며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러나 네루 총리는 인도가 중국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죠.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마오쩌둥 주석의 권력이 약화했고, 소련과의 갈등으로 인해 인도 국경 분쟁에까지 신경 쓸 틈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이에 네루는 대중국 강경책을 이어나갔어요.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이었어요. 1962년 10월 마오쩌둥은 공산당 지도부를 소집해 인도와의 전쟁을 결정했어요. 1930년대의 중일전쟁과 40년대의 국공내전, 50년대의 6·25전쟁을 거치며 실전을 경험한 중국 인민해방군의 힘에 자신이 있었던 거죠.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해방되긴 했지만 여전히 봉건적 잔재가 남아 있었고 무기도 중국에 비해 열악했어요. 인도군은 개전 초부터 중국군에 밀려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어요. 인도 북부는 줄줄이 중국군에 의해 점령됐죠. 혼비백산한 네루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과 영국이 무기와 병력을 공급했어요. 당시 지구 반대편에서는 쿠바 미사일 사태로 미국과 소련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이었던지라 자칫하다가는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세계를 뒤덮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중국이 모든 전투를 중지하고 점령한 영토와 노획한 무기, 포로들을 조건 없이 돌려주겠다고 선포하고는 후퇴하기 시작했어요. 애초에 중국의 목적은 티베트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인도에 경고하는 것이었고, 중국 정부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판단한 것이죠.

인도군의 사상자는 1만여 명에 달한 반면 중국군은 2300명에 불과했다고 해요. 인도로서는 치욕스러운 결과였죠. 악사이친 지방을 점령하고 있는 중국군에게 물러나라고 큰소리만 쳤을 뿐 현실적으로 중국군을 물러나게 할 힘이 없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준 꼴이 됐죠. 티베트 문제에도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중국으로서도 크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제사회로부터 침략자라는 비난을 듣게 됐어요. 악사이친 지방을 실질적으로 점유하게 됐다고는 하지만 그 이외의 국경 문제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두 나라가 오랜 기간 다져왔던 우호 관계가 깨지고 서로를 향한 증오가 커졌어요. 최근 발생한 국경 분쟁도 바로 해묵은 양국 간의 갈등 때문인 셈이에요. 아무쪼록 이번에는 큰 충돌 없이 두 나라가 현명하게 문제를 매듭짓기 바라봅니다.

(기사원문 보기 :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2/20170712003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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