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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생활/Diary of Jung

전자계산기

by 뉴질랜드고구마 2021. 2. 28.

전자계산기

 

다현이 학교에서 전자계산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낮에 아내가 쇼핑몰에 가서 카시오 전자계산기를 사 왔습니다. 저녁밥 먹고서 신기한 듯 여러 가지 기능을 테스트해보는 다현이 앞에 앉아 예전 이야기를 해줍니다. 뉴질랜드 교육과정을 볼 때 한국과는 많이 다름을 느끼지만 수학 과목을 대할 때면 그것을 특히 많이 느끼게 됩니다.

 

다현이가 3학년에 될 무렵에 구구단을 외우게 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민올 때 미래를 대비해서 가져온 벽에 붙이는 구구단 표를 보면서 의미도 없이 구구단을 읽어 내려가던 다현이. 그리고 학교에서 가져온 숙제를 할 때 다현이가 사용하는 셈법. 저녁에 잠자리에 누워서 '7단 한번 해보자'라고 이야기해서 다현이가 외워 나가다가 막히면 희한하게 양손 가락을 이용해서 답을 이어가던 모습..

 

다민이가 YEAR 3가 되었고, 다래가 YEAR2가 되었지만 다현이 때처럼 억지로 구구단을 외우게 하지는 않습니다. 다현이가 지나온 길을 충분히 봤기 때문입니다. 굳이 힘들게 구구단을 외우지 않아도 되는 수학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현이랑 운동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엄마가 새로 사준 계산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빠는 그런 계산기를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봤고, 대학에서 공학을 하면서 조금 써봤다는 이야기 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18살 무렵까지는 수학 시간에 계산기를 사용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

 

고등학교 때 수학을 가르치던 선생님께서 '미적분은 나중에 대학 가면 어떻게 쓰일 것이다'라고 조금만 조언을 해주셨어도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수학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깝고 바보스러운 생각도 문득 떠올랐습니다. 사인, 코사인 나올 때 까지는 잘 따라갔는데 미적분 초반까지는 잘 따라갔는데... ㅎㅎㅎ

 

대학 때 전자공학 회로 이론이나 설계에서 나오던 수학은 어찌나 어렵던지... ㅎㅎㅎ 그때 조금만 해놨더라면 지금 심심풀이로 고장 난 앰프도 고칠 수 있고, 이 무료한 시절을 조금 더 흥미롭게 보낼 수 있을까 싶은 후회도 들고...

 

얼마 전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는 계산기'가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지금 현재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질의 분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계산기가 있어서 미래를 잘 몰라 방황하는 사람은 그 기계 안에 들어가 앉아있으면 측정값을 보여주고, 어떤 직업이나 미래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그런 것. 그럼 인생들이 살아가는데 후회도 적을 것이고, 미래의 불확실에 대한 걱정도 없을 텐데... 

 

그런 계산기가 나오면 단점으로는 미리 정해져 버리는 인생에 대한 자포자기가 생길 수 있을 염려도 생기고... 지금 내게 필요한 계산기는 무엇인가? 이런 공학용 계산기가 아니어도 좋다. 50살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어떤 상황에 마주했을 때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빨리 계산이 좀 나왔으면 좋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때도 이 사람과 관계를 어느 정도까지 해나가야 하는가 계산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어떤 흥미로운 것이 보였을 때 이것이 내게 진짜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어디까지 시도해 볼 것인지 계산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포기할 것이 무엇인지 계산이 후련하게 나오면 좋겠다. 

 

다현이는 지금 YEAR10 과정 수학을 시작했다. 8학년을 보내면서 수학을 약간 잘해서 미리 10학년 수학을 공부한다고 한다. 특정 요일에 10학년 수학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서 외부에서 방문해서 몇 명 따로 모아놓고 수업을 하는가 보다. 그럴 때 이 계산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어려운 셈은 연필과 종이로 눈알이 핑핑 돌게 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 수식을 써놓고 계산기 두드려서 정확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눈알이 핑핑 돌게 풀어나가던 문제들. '수학정석'이 새로 산 계산기와 오버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