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삶은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행이나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모호한가.
가령 땀 흘리고 일을 하다가 시장해진 사람이 우거짓국에 밥 한술 말아먹는 순간 혀끝에 느껴지는 것은 바로 황홀한 행복감이다. 한편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는 사람은 혀끝에 느껴지는 황홀감을 체험할 수 없다.
결국 객관적 척도는 대부분 하잘것없는 우거짓국과 맛 좋은 고기반찬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며 남에게 보이는 것, 보일 수 있는 것이 대부분 객관의 기준이 된다.
사실 보여주고 보이는 것은 엄격히 따져보면 삶의 낭비이며 진실과 별반 관계가 없다. 삶의 진실은 전시되고 정체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것이요 움직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유형무형의 질량으로 충족되며 남는 것이다.
이민 오면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조림해왔던 컴퓨타가 한계점에 왔다. 중고로 하나 사서 적당히 쓸까 하다 부속을 사서 직접 조립하기로 한다. 케이스, 보드, 시피유, 램, 그래픽카드, 파워... 하드디스크만 기존에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쓰기로 하는데 쉽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게 큰 실수가 되었다.
새로 조립한 PC에다가 기존 하드디스크를 끼우기만 하면 컴퓨터가 돌아갈 줄 알았는데 안되네?!. 부팅 화면에서 윈도를 업데이트한다는 것이 새로 설치하는 장면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한 번만 더 생각하고 버튼을 눌렀어야 했는데 하드디스크 포맷과 함께 새로 윈도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백업하지 않은 그동안의 파일들은?
새 컴퓨터에 프로그램이 설치되고, 하드디스크 점검을 해보니 깨끗하다. 이전 파일이나 프로그램은 1도 남아있지 않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 일하면서 만들어 놓은 파일들, 다현이 공부 하느라 스캔해놓은 시험지와 관련된 것들... 몇 개월 전에 실수로 자동차 유리를 깨트렸을 때보다 더 큰 정신적 충격이 왔다. ㅡㅡ
사진에 대한 아쉬운 생각들이 더 깊다. 날아간 사진들. 다행히 백업을 주기적으로 해놔서 사라진 것은 지난 1년간의 사진과 동영상 파일이다. 하아... 내 기억이 1년만큼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그 사진들이 해 왔던 역할 때문일까? 기억을 보충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다지만...
사라진 파일들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나를 위로해주듯 책에 나온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실 보여주고 보이는 것은 엄격히 따져보면 삶의 낭비이며 진실과 별반 관계가 없다' -토지 17권째 362페이지- 치열하게 살다 간 갑자기 세상을 떠난 송관수를 생각하며 길상이 고뇌하는 장면이다.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떠오르지 않는 장면은 이미 추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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