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가 있는 섬.
섬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큰 땅덩어리 나라 '마다가스카르'
작년쯤 TV프로에 마다가스카르에 살고 있는 교민이야기가 나와서 우리에게 더욱 많이 알려진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입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는 다르게 사회 경제적으로 혼란을 격고 있는 상황이네요.
마다가스카르 안개 정국..군 경찰도 반기
연합뉴스 기사입력 2009-03-13 08:59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권정상 특파원 = 마다가스카르 반란군이 군 수뇌부를 장악한 가운데 경찰과 함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군경찰(잔다마리)이 현 정부에 반기를 들고 나서면서 정국이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군경찰 총수인 필리 길바인 장군은 12일 군경찰은 반란군을 지지하며 새로 군 참모장에 취임한 안드레 은드리아나리자오나 에드먼드 라솔로포마한드리 대령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길바인 장군은 이날 기자들에게 "질서 회복이 최우선"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길바인 장군의 이런 언급은 마다가스카르 방위조직의 두 축이 안드리 라조에리나 전 안타나나리보 시장과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는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음을 의미한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와 관련,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은 이날 국영 라디오를 통해 성명을 발표, "가장 시급한 것은 법과 질서룰 회복하는 것"이라면서 "군에 본연의 책무를 수행하고 국민을 보호할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지난 1월말 라조에리나 전 시장이 정부가 자신 소유의 방송국을 폐쇄한 데 반발해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나선 이후 정국 혼란이 장기화되고 있다.
시위 과정에서 100명 이상이 사망하는가 하면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라조에리나 시장이 별도의 내각을 구성하고 스스로 국정 책임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당국이 라조에리나 전 시장 검거에 나서자 라조에리나를 지지하는 군 반란세력이 참모장을 축출하고 군부를 장악,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대해 닐스 마쿠어트 마다가스카르 주재 미국 대사는 마다가스카르가 내전에 임박했다면서 우려를 표명했다.
..............................................................
[마다가스카르 개요]
마다가스카르어로는 Madagasikara. 공식 이름은 마다가스카르 민주공화국(République Démocratique de Madagascar/Repoblika Démokratika Malagasy/Democratic Republic of Madagascar).
공식명칭 : 마다가스카르공화국(Republic of Madagascar)
인구 : 19,105,000
면적 : 587,051㎢
수도 : 안타나나리보
정체·의회형태 : 연방공화제, 다당제, 양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대통령/대통령
공식 언어 : 메리나어·프랑스어
독립년월일 : 1960. 6. 26
화폐단위 : 말라가시프랑(Malagasy franc/FMG)
국가(國歌) : Ry tanindrazanay malala o!("O our beloved Fatherland")
아프리카 대륙 남동 해안 앞바다에 있는 인도양 남서부의 섬나라.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마다가스카르 섬과 주변의 작은 섬들을 모두 포함하며, 남위 12∼26°, 동경 43∼51°에 위치하므로 대부분 열대지역에 속한다(남서쪽 끝에서 북동쪽 끝까지의 길이는 1,570km이고 동서의 최대너비는 571km임). 수도는 안타나나리보이다. 마다가스카르 섬과 아프리카 해안 사이에 너비 800km의 모잠비크 해협이 있으며, 이 섬의 해안선길이는 3,990km이다. 면적 587,041㎢, 인구 16,606,000(2003 추계).
지리 및 기후
마다가스카르는 세계에서 그린란드, 뉴 기니, 보르네오 다음으로 네 번째로 큰 섬이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합친 것 같은 크기다. 마다가스카르는 인도양에 떠 있으며 아프리카 본토의 모잠비크와 모잠비크 운하를 사이에 두고 400km (248mi) 떨어져 있다. 모리셔스, 리유니언, 로드리게스, 코모로스 같은 주변의 화산섬들과는 달리 마다가스카르는 화산 분화가 아니라 대륙이 표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본토에서 1억 6천 500만년전 떨어져 나왔다). 동쪽 해안의 좁고 긴 땅에는 다우림이 무성하며 고도가 높은 중앙 고원은 서늘하고 서쪽에는 평원과 저지 고원이 위치한다.
마다가스카르는 아주 다양한 환경의 생육지가 있는 대륙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으며,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마다가스카르에만 있는 동식물이 많다(아주 특이한 것들도 있다). 국제 자연 보존 협회는 마다가스카르를 지구상에서 가장 생태학적으로 풍부한 나라 중 한 곳으로 지정했다. 마다가스카르와 근처의 코모로스에 아프리카에 있는 꽃나무의 거의 1/4이 있다. 또 여우원숭이의 알려진 종류 중 90%, 세계 카멜레온의 절반이 여기에서 발견된다. 건조 지역에는 바오밥 나무와 특이한 선인장, 알로에가 자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생태계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이 이 섬에 들어오면서 쌀과 길을 내기 위한 벌채 기술을 가져왔고 오늘날은 상황이 심각해졌다. 원래 삼림의 15% 정도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남쪽 끝 부분만 제외하면 마다가스카르는 전적으로 열대 기후에 속한다. 그러나 섬 거의 전체에 걸쳐 있으며 분수령을 이루는 높은 고원은 사과와 핵과가 자랄 만큼 서늘하고 800m (2896ft) 이상에는 포도원도 있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겨울에 눈도 볼 수 있다. 무역풍은 동쪽에서 불어오고 계절풍은 북서쪽에서 불어온다. 동해안과 북쪽 끝에는 비가 많이 오지만 강수량이 적은 지역인 고원 남서부는 일년 내내 건조하다. 1월에서 3월까지 동해안, 북쪽 끝, 때로는 남쪽 끝에도 파괴적인 사이클론이 덮쳐온다.
역사
마다가스카르 국민들은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의 혼혈이며, 1500년에서 2000년 전부터 마다가스카르에 살아 왔다. 석기 시대의 유물들을 보면 아마도 더 오래전에도 문명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주자 대부분은 말레이-폴리네시아 계로, 인도네시아와 남동 아시아에서 인도양을 건너 왔지만, 동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아랍인, 인도인, 포르투갈 상인, 유럽 해적, 프랑스 개척민들이 모두 뒤섞여 오늘날 마다가스카르에 살고 있는 공식적인 18개 부족 혹은 씨족이 형성되었다. 초기의 마다가스카르인들이 자신들이 남동 아시아에서 키우던 작물을 가지고 들어왔고, 논이 끝없이 펼쳐진 마다가스카르의 농업 지역 풍경을 보면 마다가스카르가 아프리카가 아니라 아시아에 있는 나라처럼 느껴진다.
마르코 폴로는 여행기에서 마다가스카르에 대해 적고 있으며 아랍의 지도 제작자들 역시 마다가스카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 나라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은 포르투갈인으로, 1500년 디에고 디아스(Diego Dias)의 지휘를 받는 함대가 도착했다. 이어지는 시기 동안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영국인이 모두 이 섬에 영구적인 근거지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17세기 한 무리의 무법자들이 정부가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귀족들은 마다가스카르 원주민, 특히 일 상트 마리 주변의 원주민들에게 전리품과 암매장한 보물들을 주었으며 원주민 여자와 결혼하기도 했다. 원주민들이 카리브해의 해적들을 거부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1000여명이 넘는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내덜란드, 미국 등의 해적들이 마다가스카르의 동해안을 기지로 삼고 있었다. 이 지역은 희망봉을 돌아오는 배를 공격하기에 아주 입지가 좋았던 것이다.
유럽과의 무기 및 노예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마다가스카르에는 여러 왕국들이 생겨났고 작은 왕국끼리 대립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18세기 후반이 되자 메리나 씨족이 주도권을 잡았다. 1820년 영국은 메리나 씨족의 통치 하의 독립상태를 인정하는 조약에 서명했지만 영국의 영향은 20세기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었다. 1883년경이 되자 영국은 조용해지고 프랑스가 마다가스카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유일한 유럽 세력으로 남았다(대신 프랑스는 잔지바르에서의 영국 주권을 인정해 주었다).
프랑스는 1895년 서부 해안을 통해 침략해 놀란 메리나 씨족의 방어를 물리치고 조세프 갈리에니(Joseph Gallieni) 장군을 초대 총독으로 하는 식민 정부를 세웠다. 갈리에니는 1897년 라나바로나(Ranavalona) 3세 여왕을 알제리로 추방하면서 마다가스카르의 군주제를 종식시켰다. 그는 영국의 영향력을 일소하려 애쓰면서 프랑스어를 공식 언어로 선언하여 마다가스카르어도 없애려 했다. 프랑스가 명목상으로는 노예 제도를 폐지했지만 실제로는 억압적인 세금 체계를 도입하여 세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강제 노동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토지는 외국인 정착민과 회사를 위해 몰수되었고 수입과 수출은 커피 농장을 기반으로 발전해갔다.
2차 대전 동안 마다가스카르의 프랑스 식민 정부는 프랑스 비시 괴뢰 정부에 협조했고, 영국은 일본의 침투를 막아 마다가스카르를 인도양의 기초 기지로 이용한다는 명목상의 핑계로 마다가스카르를 공격했다. 1943년 영국은 드골의 자유 프랑스에 마다가스카르를 돌려주었다. 전후 마다가스카르는 애국주의적 반동을 겪었다. 많은 마다가스카르인들은 프랑스의 기준으로 훈련받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관념 하에 공부를 했다. 그들은 더 이상 스스로의 나라에서 2등 시민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다. 1947년 폭동이 일어나 수천 수만의 마다가스카르인들이(아마도 80,000명에 달할 것이다) 희생되었지만, 부패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양한 토착 정당이 1950년대 탄생했고 1958년 드골이 프랑스에서 재집권했을 때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의 해외 연방에 속하면서 자치 공화국이 되는 문제로 투표중이었다. 1960년 마다가스카르는 평화롭게 독립했지만, 농장주, 즉 프랑스계 정착민들이 여전히 막후 세력을 쥐고 있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필버트 치라나나(Philibert Tsiranana)는 점점 압제적이 되어 갔고, 메리나 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메리나 부족은 일반적으로 소련 진영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었다) 공산 국가와의 외교를 거부했다. 그는 1972년 마다가스카르 남부에서 일어난 폭동을 잔인하게 진압했고 그것이 치라나나의 몰락의 시작이었다. 그는 곧 사임하면서 권력을 군대 사령관이었던 가브리엘 라만초아(Gabriel Ramantsoa) 장군에게 넘겨주었다.
마다가스카르가 독립하자마자 경제는 서서히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마다가스카르가 아프리카 경제 연방(Communaute Financier Africaine, CFA)에서 탈퇴하자 급강하에는 속도가 붙었고 프랑스 농장주들은 도매업에서 손을 떼고 자본과 기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군 출신의 대통령이 자주 바뀌는 것도-취임한 지 일주일만에 암살된 대통령도 있었다- 어려운 경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디디에 라치라카 제독이 이끄는 새로운 관리 집단은 권력을 잡자 은행과 다른 주요 산업을 보상없이 국유화하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프랑스계는 돈과 기술을 가지고 짐을 싸 본국으로 돌아갔다.
1970년대 후반이 되자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했으며 정부는 공산 국가 쪽으로 아주 많이 기울어 있었다. 라치라카는 심지어 스스로 정부 정책과 이론에 대한 '레드 북(red book)'을 내기도 했다. 1981-82년의 고조되는 채무 위기로 정부는 개혁 속도를 늦추었고 IMF가 차관의 대가로 요구한 긴축 조치를 과시했다. 경제는 IMF 프로그램을 따르면서 다소 나아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곧 다시 나빠졌다. 리차라카는 1989년 3월 선거에서 상당히 의심스러운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곧 폭동으로 이어졌다. 더 심한 일은 1991년 평화적인 시위를 하던 시위대가 북한에서 훈련받은 대통령 경호인단에게 라치라카의 화려한 새 궁전(북한의 원조로 지어진 것이다) 앞에서 살해당했던 일이다.
90년대 초반에는 시민 폭동이 잦았다. 알버트 자피(Albert Zafy) 교수가 4년의 임기 동안 나라를 단결시키거나 관료들의 실정을 극복하는데 실패한 후, 1996년 라치라카가 선거에서 다시 승리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650만 인구 중 25%만이 선거인으로 등록해 투표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은 마다가스카르가 정치 상황에 있어서는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8년 제안된 새 헌법은 리치라카에게 정부 장관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더 강력한 권리까지 주고 있다.2000년 초 마다가스카르에는 엄청난 사이클론이 여러 차례 몰아쳐 파괴와 홍수를 가져왔다. 13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났고 10,000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
CNN방송과 AP통신 등은 7일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대통령궁을 지키던 군부대가 시위대에 발포해 23~40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쳤다고 보도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반정부 지도자 안드리 라조엘리나(34)를 따르는 시위대가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대통령(59)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왔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양측에 폭력 종식을 촉구하며 이른 시일 내 특사를 파견할 것이라 밝혔지만 소요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나나리보 시장을 지낸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은 2001년 대선에서 옛 독재자 디디에 라트시라카를 누르고 당선돼 큰 기대를 모았으며, 2006년 재선됐습니다. 그러나 정치개혁과 부패 척결에 실패하고 경제발전이 늦어지면서 국민들의 반발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몇 년 전에는 마다가스카르를 기독교 국가로 개조하겠다고 공언해 위헌 논란을 불렀다고 합니다. 2006년에는 그가 유럽순방을 떠난 동안 쿠데타가 발생해 귀국이 미뤄지기도 했습니다.
반정부 시위를 이끄는 라조엘리나는 DJ 출신으로, 2007년 말 안타나나리보 시장에 당선됐습니다. 정부의 부패와 실정을 공격하면서 인기를 얻은 그는 지난달 말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임시정부’를 꾸려 수반을 자처했다고 합니다.
반정부 시위로 약탈·방화가 일어나자 대통령 측은 이를 기화로 강경 진압에 나섰으며 지난 3일에는 라조엘리나를 아예 시장직에서 해임했습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오히려 더 큰 반발만 불렀다. 지난달부터 계속된 소요 사태 희생자는 줄잡아 100~120명에 이릅니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인 마다가스카르는 전세계 생물종의 5%가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로 유명하지요. 그러나 자연의 낙원으로 알려진 이 나라의 국민들은 굴곡진 역사와 정정불안, 경제 실패로 고통받아왔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마다가스카르는 1960년 ‘아프리카의 봄’ 때 독립했습니다. 수십년간 사회주의 성향의 독재정권이 이어지다가 90년대 들어 다당제 민주선거가 도입됐습니다.
마다가스카르는 임업, 어업, 농업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습니다. 주요 작물은 커피, 바닐라, 사탕수수, 코코아, 벼, 카사바 등이며 특히 바닐라는 세계 최대 생산국입니다. 그러나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져온 플랜테이션 농업 비중이 높다보니 서방 시장의 등락에 국가경제가 휘둘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 85년 코카콜라가 바닐라 함량을 낮춘 ‘뉴코크’를 내놓자 마다가스카르 전체 경제가 휘청였고, 이듬해 코카콜라사가 다시 바닐라 함량을 높인 ‘코크 클래식’ 생산라인을 늘리자 간신히 마다가스카르도 되살아났다는 일화가 있지요. 이 때문에 이 나라 경제에는 ‘코카콜라 경제’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80년대 들어 이 나라는 사회주의 경제노선을 버리고 세계은행의 지도에 따라 구조개혁에 나섰습니다. 정부는 88~93년 민영화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수출촉진구역(EPZ)을 만들어 개발에 앞장섰고요. 그러나 기대했던 성장 대신 경기침체만 이어졌다. 정부는 2차 민영화를 실시, 97년 이후 외국투자를 유치하면서 외견상 성장을 이루는데 성공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최빈국들을 대상으로 한 빈곤감소전략계획(PRSP)을 마다가스카르에 적용하기로 하고 재차 고강도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라발로마나나 정부는 토지소유 관련법을 정비하고 서구식 경제 기법을 도입하면서 해외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동시에 생태관광(에코투어리즘) 상품을 만들고 고부가가치 플랜테이션 농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서방 간 투자유치·경제개혁 협상이 진행되는 이면에서 정부 관리들의 부패는 극에 달했고 경제 양극화만 심해졌다고 합니다. 경제개혁·개방의 성과는 국민들에게는 별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특히 농촌 빈곤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AP통신은 인구 2000만명의 절반이 하루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극빈층이라고 전했습니다. 성인인구의 30%는 문맹이라고 합니다.
정부는 자원 개발을 추진한다며 최근 몇년새 세계적인 광물업체 리오틴토에 광산개발권을 주고 해안유전 시추를 위해 외국 기업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침체로 인해 에너지·광물자원 개발이 예정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합니다. 현재 마다가스카르에는 한국 교민과 주재원 등 250여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http://cafe.daum.net/fknights 에서 퍼온 글)
'Issue&Topic > News & Map'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인도 국경 갈등 '선' 넘나 [한국일보] (0) | 2009.04.06 |
---|---|
조세피난처의 '굴복' [한국일보] (0) | 2009.03.13 |
북아일랜드 피의 과거로 회귀하나[연합뉴스] (0) | 2009.03.11 |
‘부끄러운 佛’ 드러낸 섬들의 반란[경향닷컴] (0) | 2009.03.05 |
'대통령 암살' 기니비사우는 어떤 나라[뉴시스] (0) | 2009.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