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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생활/Diary of Jung

프랑스를 좋아하지 않는 K 선생님.

by 뉴질랜드고구마 2011. 11. 19.

두번째 공부가 끝난 후

K선생님과 전화로 대화를 나누던 중에 프랑스와 관련 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럭비 월드컵에서 뉴질랜드와 프랑스가 결승을 치르게 된 부분에서)


K선생님은 프랑스에 대해서 뉴질랜드 사람들이 특히 감정이 좋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 ...

몇년전 럭비월드컵에서 결승전에서 뉴질랜드가 프랑스에 패 했을 때

그 다음날 모든 뉴질랜드 사람들이 화가 나 있었고,

그 슬픈 후유증이 일주일 넘게 계속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 ....


프랑스는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태평양에서 핵실험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1985년 오클랜드 항에 정박중이던 그린피스(GREENPEACE)의 'Rainbow Warrior'를 폭파했습니다.

이 폭파와 선박 침몰로 그린피스 사진작가 1명이 사망합니다.


@ 1985년 7월 10일 자정 즈음 폭파 당한 Rainbow Warrior 호



@ 레인보우 워리어호.  이들은 프랑스의 핵실험에 반대하여 프랑스의 핵실험 기지인 폴리네시아로 모루로아환초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범인은 프랑스 대외안전국(DGSE). 이 사건으로 프랑스의 미테랑 정부는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K선생님은 그 때 프랑스의 핵실험 반대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 ...


여행을 하면서나

이후에 여러차례 만난 외국인들과의 경험을 종합 해 보면

영연방 국가 외국인들은 특히 프랑스와 프랑스인에 대해서 감정이 좋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대하는 감정처럼..

그것은 아마도 역사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과 경쟁 관계에서 기인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


그나저나 프랑스는 아직도 핵실험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은 핵실험을 계속하고,

핵무기를 개량하고 강력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면서

새로 핵무기를 갖고자 하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제재와 협박을 하는걸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일본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가 남 이야기가 아니듯

뉴질랜드에 살면서 프랑스 핵실험이 남 이야기가 아니게 다가오는것은

프랑스 핵실험 장소가 남태평양 섬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래 글들은 프랑스 핵실험과 관련한 다른분의 블로그 글을 스크랩 했습니다.

원문 주소는 아래 링크를 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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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2월 13일 - 프랑스, 사하라에서 핵실험 성공


1960 년 오늘, 프랑스가 알제리 남서부 사하라 사막 ‘인 에케르’ 핵 실험장에서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합니다. 이로써 프랑스는 미국, 소련,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의 핵보유국이 되었습니다. 이 실험에 사용된 원자폭탄은 TNT 화약 70킬로톤에 이르는 양으로, 미국이 최초실험한 원자탄의 3배가 넘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죠. 미국의 압력과 유엔의 비난을 무시하고,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 프랑스 대통령은, 핵실험 성공을 보고 받은 후 “위대한 프랑스 만세! 오늘 아침 이후로 프랑스는 더욱 강하고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라고 환호했습니다.

'샤를 드 골' 전 프랑스 대통령. (1890.11.22~1970.11.9)


2 차 대전 당시 4년 남짓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은 경험은 콧대 높은 프랑스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고, 전후 ‘위대한 프랑스의 재건’을 부르짖은 드골 대통령이 찾은 해답은 바로 독자적인 핵무장이었습니다. "프랑스 방위는 프랑스의 수중에 있어야 한다. 프랑스인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것이 아닌 어떤 전쟁 혹은 어떤 전투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군사력의 기본이 핵무장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그것을 제조하던 혹은 돈으로 구입하든 간에 그것은 우리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핵무장을 단행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드골 대통령의 믿음은 곧 프랑스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현실화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프랑스는 수상 직속기구인 원자력위원회(CEA)를 설치했고, 1947년 연구용 원자로의 건조에 착수하여 1948년 12월에 가동시켰습니다. 1953년부터는 핵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하여 58년까지 3기의 원자로가 ‘마르쿠르’ 지역에 들어섰죠.



1956 년 10월 29일, 수에즈 운하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제 2차 중동전쟁은 핵무기에 대한 프랑스의 열망을 더욱 부채질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에 대한 국유화를 선언하자,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이후로 이 운하의 경영권을 주장하던 프랑스와 영국은 이스라엘을 부추겨 이집트를 공격하고, 수에즈 운하를 장악합니다. 11월에 들어와 UN이 중재에 나서고, 소련 당국은 모스크바 주재 프랑스와 영국 대사를 크렘린궁으로 불러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인 압력을 가하죠. “대사 동무, 파리에 핵폭탄이 떨어지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소.” 수에즈 운하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핵폭격을 가할 수도 있다는 위협이었습니다. 거기다 중동지역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도 양국의 군사행동을 비난하니, 두 나라는 고스란히 수에즈 운하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56년 수에즈 운하를 점령한 프랑스와 영국은 소련의 핵공격 위협에 물러나야 했습니다.


1960 년까지 프랑스가 원자력 개발에 들인 비용은 모두 3억 6천만 달러 규모였고, 핵폭탄 제조를 위한 플로토늄도 축적되었습니다. 마침내 1960년 2월 13일 실시된 핵실험은 프랑스를 핵보유국의 반열에 올렸죠.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해 4월 1일에는 두 번째 핵실험이 이어졌습니다. 이 후에도 여러 차례 핵실험 끝에 프랑스는 폭발력 60Kt 규모의 AN 22 원자폭탄을 보유할 수 있었죠. 1962년, 오랜 독립전쟁의 결과로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자 프랑스는 새로운 핵실험장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찾아낸 곳이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아름다운 산호섬들인 ‘무루로아’와 ‘팡가타우파’였습니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팡가타우파' 환초.

1966 년 7월 2일, 무루로아 환초에서 첫 번째 버섯구름이 솟아 오른 이래, 마지막 실험이 있었던 1996년 12월까지 30년 동안 무려 193회의 핵실험이 두 섬에서 실시되었습니다. (무루로아 173회, 팡가타우파 15회) 적어도 핵무기에 관한 한 프랑스는 줄기차게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67년 프랑스 국방부에서 간행한 ‘4방위 전략’에는 미국까지 가상 적국에 포함되어 있었으니 말입니다. 1978년에는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의 중성자탄 실험에 성공하죠.

1970년 8월 24일, 무루로아 환초에서 있었던 핵실험.

물론 그 대가는 남태평양의 산호섬에 불러온 끔찍한 환경재앙이었습니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국제적인 환경단체들은 남태평양에서 계속되는 프랑스의 핵실험을 육탄저지하기에 이르렀고, 1985년 프랑스 정보부는 그린피스 소속의 ‘레인보우 워리어’(무지개 전사)호에 폭탄을 장치해 침몰 시키는 등 비밀공작으로 대응합니다.

1985년 7월 10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항에 정박중이던 '레인보우 워리어'호에 프랑스 국방부 대외보안총국(DGSE) 요원이 장착한 폭탄이 터져,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 집니다.

1995년, “더 이상 핵 실험을 실시할 필요가 없도록 컴퓨터 모의실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핵실험을 재개한 프랑스 정부는 전 세계 여론의 질타를 받았죠. 이 무렵 헐리우드에서 나온 영화가 바로 ‘고질라’였는데, 이 영화 속에는 프랑스가 핵실험을 통해 괴물 출현을 가져온 원인 제공자로, 고질라에 밟혀 뉴욕이 초토화되는 미국은 피해자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근데, 핵실험에 대해선 미국, 니들도 할 말 없다. 니들은 프랑스보다 몇 배 더하면 더했자너. 개인적으로 영화 내내 등장했던 ‘쟝 르노’가 연기한 프랑스 비밀요원의 목소리, ‘프랑스가 저지른 일은 끝까지 책임진다. 그것이 고질라일지라도’ 뭐 이런 부분에선 엉뚱하게도 드골을 떠올렸습니다.)

미국 영화 '고질라'는 프랑스의 핵실험으로 인한 돌연변이 괴물을 탄생시켰습니다.


현 재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로 평가되는 프랑스의 핵전력은 지하 사일로로부터 발사하는 IRBM SSBS 18기, SLBM 16기를 탑재하는 원자력 잠수함 5척, ASM P 핵미사일을 탑재하는 미라주 IV A형 폭격기 34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전면적인 핵무기의 폐기가 없는 한, ‘핵전쟁을 막기 위해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모순적인 상황에서 인류는 당분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ASM P 핵미사일을 탑재하는 프랑스 공군의 미라주 IV A 폭격기.


원문 : 곰PD의 전쟁이야기 (http://blog.ohmynews.com/gompd/14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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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핵실험 계획에 지구촌 분노 폭발


30년전 까지만 해도 인간의 발길을 거부했던 남태평양상의 한 작은 섬 모뤼로아(Moruroa). 세계적 관광지인 하와이에서 동남쪽으로 5천km,남태평양의 프랑스령 타이티섬에서 동북 쪽으로1천200여km 떨어진 투아모투제도에 있는 한 섬이다.

길이가 27km,너비가 13km로 우리나라의 강화도만한 크기의 이 섬은 따뜻한 쪽빛 바닷물과 아름다운 산호초가 섬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커다란 야자나무 그늘에 몸을 쉴 수 있는 그야말로 천국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프 랑스는 바로 이곳과 인근 팡가토파섬에서 오는 9월부터 내년 5월까지 8차례의 핵실험을 재개키로 결정, 핵무기의 확산을 막아보려는 시대적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다. 물론 프랑스의 핵실험 재개는 `신 드골주의'를 표방하는 자크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이 지난 5월7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직후부터 예견되기는 했다.

시라크가 대통령에 당선하자 프랑스의 군부와 민간 군수산업계는 핵실험 재개를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번에 프랑스가 실험할 핵폭탄의 규모는 150kt이하라고 프랑스의 신문 `르 몽드'지는 보도하고 있다.

` 르 몽드'는 남태평양의 산호섬인 모뤼로아와 인근 팡가토파에서 번갈아가며 실시될 핵실험은 한번에 1억 프랑(160억 원)의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하고 핵폭탄의 강도는 지난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8배인 150kt에 조금 못 미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오는 7월부터 두 섬에 핵실험 전문가 및 기술진이 파견돼 2개월 동안 핵실험 준비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핵폭탄을 설치하기 위해 해저로부터 깊이 1km에 이르는 구멍을 파라는 명령이 이미 내려졌다고 전했다.

프 랑스의 원자력 에너지위원회(CEA)에 따르면 프랑스는 1960년 첫 핵실험을 개시한 이래 지난 92년 4월 미테랑대통령이 핵실험을 중단할 때까지 32년간 192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참고로 미국은 1천회 이상, 러시아는 700회 이상 핵실험을 실시했다.

프 랑스의 첫 핵실험은 미국이 1945년 뉴멕시코주에서 사상 최초의 핵실험을 단행한 지 15년 뒤인 60년 2월 프랑스의 식민지인 알제리가 독립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드골의 지시로 사하라사막에서 이뤄졌다. 이로써 프랑스는 미국소련 영국에 이어 네번째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됐다.

62년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자 알제리에서 더 이상 핵실험을 할 수 없게 된 프랑스는 핵실험 장소를 남태평양으로 옮겼으며 지스카르데스탱 대통령 재임시절인 75년부터는 지하에서 핵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81년 프랑스 최초의 좌파대통령이 된 미테랑은 핵실험을 계속 진행했고 핵잠수함 숫자를 늘렸으며 다탄두 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군비경쟁에 주력하는 강경정책을 추진했다.

프랑스는 서방세계에서 핵무기 반대운동이 일어나던 80년대에도 이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85년 프랑스의 핵실험을 반대하던 그린피스 소속 `무지개 전사'호를 폭파. 침몰시킨 비밀 첩보요원이 뉴질랜드에서 체포된 사건은 프랑스의 핵정책을 대변해 주는 것으로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프랑스의 과학자들은 지난 10년간 레이저를 이용, 실험실 내에서 모의 핵실험을 해왔는데 프랑스의 군사관계자들은 `페뷔'라고 명명된 이 체제로는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 재 프랑스는 정교하고 다양한 모의 핵실험을 위해 100억 프랑(20억 달러)이 소요되는 초강력 레이저를 개발하는 등 더욱 강력한 장비를 개발하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가 핵실험을 재개하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다른 나라가 프랑스에 대한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핵 억지력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프 랑스의 핵전문가들은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들은 오는 2010년을 고비로 그 효율성이 떨어져 핵 억지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가 갖고 있는 핵무기는 15년 이내에 교체해야 하는데 핵 억지력 유지에 필요한 잠수함 발사용 핵무기 등 미래형 핵무기는 실험을 해보아야만 그 성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또 한 핵무기의 정교화 및 소형화 등 미국이나 러시아에 비해 뒤진 분야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핵실험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프랑스의 입장이다. 프랑스는 이번의 핵실험을 통해 프랑스 핵 공격력의 확실성 및 신뢰성, 안전성 등을 확보 하고난 뒤 96년 가을 모든 종류의 핵실험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에 서명한다는 계획이다.그 다음에는 실험실내에서의 모의핵실험(simulation)으로 실질적인 핵실험을 대체한다는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

오 는 2002년 예정으로 모의 핵실험 기술과 시설을 갖추는 데는 약 100억 프랑(1조6천억 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프랑스의 핵실험 재개발표에 대해 각국정부 및 환경단체의 반발은 매우 거세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핵실험재개 예정지인 남태평양상의 모뤼로아섬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인 호주와 뉴질랜드의 반발은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도 강하다.

우 선 호주정부는 프랑스와의 군사협력을 동결하고 프랑스 회사들과의 방산품계약을 재고하겠다고 반발했다. 또 성난 시위군중들은 프랑스의 핵실험 재개에 대해 프랑스대사관 밖에서 경찰저지선을 뚫고 대사관내로 진입을 시도하는 등 과격한 반대시위를 벌였으며 시위군중들중 일부는 경찰에 체포됐다.

이른 새벽 퍼드시에 있는 프랑스 영사관이 방화로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노동조합 소비자단체 환경단체 등은 프랑스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호주정부도 비공식적으로 이 같은 캠페인을 지지했다.

언 론도 프랑스의 핵실험 재개에 대한 반대캠페인을 부추겼다.한 텔레비전 토크쇼 사회자는 "프랑스 대사관 정문 앞에 한 트럭분의 말똥을 퍼붓자"고 제안했다.프랑스는 호주국민들의 분노가 폭력양상을 띠자 호주 정부당국에 대해 자국의 외교관 및 외교시설들에 대한 철저한 경비를 다급하게 요구해야만했다.

뉴 질랜드는 핵실험 재개를 발표한 자크 시라크프랑스대통령을 `나폴레옹이나 드골처럼 교만한 인간'이라고 비난했고 프랑스 함정의 입항 및 공동군사훈련 등 군사적 협력의 즉각적인 중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핵보유국으로서 현재도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은 프랑스에 대해 핵실험중지를 요구하지 않았다.

남태평양 국가 외에 미국 러시아 일본 캐나다 노르웨이 벨기에 등 각국이 일제히 반발하고 국내에서의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자 프랑스는 궁여지책으로 권위있는 생태학자들을 초청해 핵실험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응은 냉소적이다." 그렇게 안전하다면 남태평양이 아닌 파리에서 실험해라" 뉴질랜드와 일본은 즉각 이렇게 대응했다.

<유상덕국제1부기자>



[프랑스가 핵실험을 진행한 남태평양상의 섬 모뤼로아(Morur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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