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부터 세계 배낭여행이라는 달콤한 꿈이 한국인들의 잠자리를 적시기 시작했다. 한비야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이며 선지자이며 예언자다. 김남희는 한비야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난쟁이다. 두 여자의 이야기는 신화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둘 다 유학을 다녀와서 번듯한 직장을 다니다 삼십 대 중반에 배낭과 함께 사라졌다. 고난과 모험과 성장의 서사를 안고 돌아왔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한비야는 ‘바람의 딸’이고, 김남희는 ‘까탈이’(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다. 이것이 두 여행의 차이다.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한비야가 자신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면 김남희는 자신을 버리기 위해 떠난다.
한비야는 오지여행을 다룬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2·3·4권과 중국 여행기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국내 여행기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긴급구호 활동기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을 펴냈다. 김남희는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 1·2·3권을 펴냈다. 두 사람의 행보가 겹치는 지역 중 라오스와 버마를 여행해보자. 한 번은 한비야와 함께, 한 번은 김남희와 함께.
종교와 현지인에 대한 다른 태도
루앙프라방에서 한비야는 겁도 없이 아편지대 ‘골든 트라이앵글’ 밀림이 기다리고 있는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동행자가 “젊어서 무모하다”고 투덜대는 김남희와 달리, 한비야는 이스라엘 청년을 살살 꼬여서 아카족들이 사는 깡촌 마을들을 헤맨다. 소나기 속에 진흙탕 길을 헤매다가 운 좋게 경운기를 얻어타는 식이다. 아편을 피워대는 남자 대신 고된 노동을 감당하는 아줌마들과 친해지고, 아이들에게 색색의 풍선을 나눠준다. 김남희는 더위와 모기에 시달리며 천천히 라오스 남쪽을 종단한다. 소요하는 시간. 그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고 딸의 얼굴을 살피며 머리띠를 골라주는 어머니를 보며 괜스레 슬픔에 젖기도 한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밀림에서 비린 닭고기도 척척 삼키는 한비야와 달리, 김남희는 곤충 요리를 먹는 친구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본다.
그리고 버마.
한비야는 배낭여행족들에게 “버마 사람들이 믿을 수 없이 친절하고 유순하며, 물가는 믿을 수 없이 싸고, 날씨는 믿을 수 없이 덥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면 그에겐 용광로에 들어간다 해도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김남희는 버마에 대해 더 예민하다. 외국 여행자들이 버마의 민주화에 도움이 된다는 쪽과 그렇지 않다는 쪽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왔다. 김남희는 버마에서 쓰는 돈이 군사독재 정권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급적 적은 돈만 환전하고 정부 소유의 숙박·교통 시설을 절대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만달레이에서 제일 먼저 “농담 한마디 했다는 죄목으로 7년간 옥살이를 한” 코미디언 파파 레이의 공연장으로 간다.
불교 유적들에 만족할 한비야가 아니다. 그는 만달레이 서쪽의 히시포라는 소도시로 달려가 조그만 국수가게를 하는 ‘살아 있는 천사’ 낸시 아줌마를 만난다. 한비야는 낸시에게 놀라운 여행 경험을 털어놓고, 낸시는 한비야에게 자신의 험난한 인생길을 고백한다. 떠나는 날, 새벽같이 찾아온 낸시는 커다란 망고 두 개와 재스민 목걸이를 건넨다. 시골마을 벵캉에서는 여선생의 집에 머물며 허드렛일과 요리를 도와준다. 한비야는 현지인의 삶을 체험할 기회를 억척스럽게 찾아내고, 기어이 그들과 친구가 된다. 김남희는 훨씬 소심하고 조심스럽다. 그는 바간에서 타나카를 파는 아가씨, 지옌넷의 초대를 받는다. 온 식구가 반가워서 법석을 떠는데도 김남희는 “없는 살림에 민폐만 끼칠 것 같아” 지옌넷을 데리고 나와 식당에서 저녁을 대접한다.
한비야는 답, 김남희는 의문
한비야는 세계 배낭여행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긴급구호 활동에 뛰어들었다. 여행 초기부터 난민구호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은 정확하게 실현됐다. 김남희는 지금 스페인에서 남미여행을 꿈꾸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헤매야 할 것이다. 그들의 현재는 여행의 자연스런 결말이다.
한비야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쟁취한다. 김남희는 애초부터 목표가 없는 과정의 연속이다. 한비야는 답을 얻어서 돌아오고, 김남희는 의문을 가지고 돌아온다. 한비야는 유쾌하지만, 김남희는 쓸쓸하다. 한비야는 세상으로 씩씩하게 나아가지만, 김남희는 계속 자신에게 돌아온다. 한비야는 여행의 모든 난관을 싱글벙글 뛰어넘지만, 김남희는 짜증내고 까탈을 부리고 자신에게 절망하다가 다시 반성한다. 그러므로 김남희는 항상 한비야보다 느리다.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한비야는 아줌마고, 김남희는 소녀다.
역시 문제는 용기다. 기자의 경우는 글쎄,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등장하는 소시민에 속한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벌떡 일어나 애국가를 듣는다. 화면에는 한비야와 김남희가 등장한다. 그들은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처럼,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나도 한 세상 떼어 메고 날아갔으면”하다가, 노래가 끝나면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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